21일부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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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비에체임버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클래식 애호가들의 ‘봄’은, 언제나 음악으로 먼저 온다.
3월 말,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시작된 ‘클래식 축제’의 맏형 통영국제음악제의 불씨가 서울로 북상한다. 대한민국 전역의 주요 악단들의 웅장한 교향악과 섬세하고 밀도 높은 실내악, 그 사이를 잇는 세대와 지역의 서사가 맞물린 ‘음악적 파노라마’가 예고됐다.
“다들 칼 갈고 오더라고요. 어떤 데는 리허설을 10번을 한대요.”
38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 축제에 참석하는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향,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등 소위 ‘3대 오케스트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엔 전국 19개 국공립 교향악단에 세계 최정상 단체인 베르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까지 있다.
교향악축제는 지역의 악단들에 ‘이벤트성 축제’가 아닌 클래식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핵심 무대인 ‘예술의전당’에서 각자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한 번의 공연이 평판이자 명성이고, 악단의 위상을 정립하며, 다음 공연의 ‘기대치’를 가르는 단판 승부의 장이다. 그러니 악단에선 저마다의 역량을 집중해 집요한 연마의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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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부터 열리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예술의전당 제공] |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4월 1일~23일)는 ‘커넥팅 더 노츠(Connecting the Notes)’라는 부제로 열린다. 올해에도 쟁쟁한 라인업이 기다린다. 이번엔 신생의 패기와 중견의 깊이가 충돌하는 축제가 될 전망이다.
2025 게오르그 솔티 지휘자상 수상자인 홀리 최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첼리스트 최하영과 무대를 준비하고 있고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여성 지휘자 박승유가 이번 교향악축제 무대에 데뷔한다. 반면 1985년 창단 이해 춘천시립교향악단은 40년이 넘는 축적된 시간으로 ‘완성도’의 무기를 꺼내 든다. 지휘는 송유진,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다.
협연자 라인업이 화려하다. 국제 콩쿠르 우승자와 차세대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며, 교향악단과 솔리스트가 만들어내는 상호 경쟁의 밀도가 높아졌다. 단순한 ‘협연’이 아니라, 한국 클래식 생태계 전체가 자신들의 수준을 시험하는 무대다.
올해 기대작 중 하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헝가리 출신으로 2007년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온 가보르 터카치-너지의 지휘와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의 협연이다. 이 공연은 해외 유수 악단이자 축제의 상주 단체 초청을 넘어 ‘교향악축제의 외연’을 확장한 시도로 읽힌다. 이 축제가 더 이상 ‘국내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접근성’이다. 디지털 스테이지를 통한 실시간 무료 중계와 야외 LED 상영은 공연장을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콘서트홀로 확장한다. 특정 계층의 취향이 아닌 동시대 시민이 공유하는 공공 경험으로 클래식 축제의 문턱을 낮추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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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SSF 사무국 제공] |
교향악의 거대한 파동이 지나간 자리,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난다. 섬세한 호흡으로 가득 채워질 이 축제의 힘은 규모가 아닌 ‘구성’에 있다. 천편일률적 기존 클래식 축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주제를 위한 주제가 아닌, 음악을 위한 음악이자 축제의 정체성이 짙게 묻어난 프로그램이다.
2006년 시작된 SSF는 “실내악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며 한국 실내악 지형을 바꿔온 대표 축제다. 어느덧 서울을 대표하는 예술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국내 곳곳에서 실내악 축제가 생겨나는 계기를 만든 ‘모델’이다.
올해 주제는 ‘모차르트와 영재들’. 이 축제는 단순히 모차르트를 반복 연주하지 않는다. 그의 ‘천재성’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프로그램으로 번역해 풀어냈다. SSF 특유의 기발하고 독특함이 묻어난다.
‘작품번호 제1번’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시작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명의 작곡가가 ‘거장’으로 내딛는 위대한 첫걸음을 조망하는 자리다. 반면 ‘늦게 피어난 꽃들’은 하이든과 드보르자크처럼 대기만성형 음악가들을 조명, 성공의 시간표는 모두가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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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 [SSF 제공] |
SSF의 프로그램 구성은 단순한 곡 나열이 아니라, 음악사를 하나의 서사로 재편집하는 작업이다. 관객은 공연을 듣는 동시에 ‘읽게’ 된다. 음악이 해설 없이도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다.
또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프랑스 1886’ 같은 프로그램은 음악을 역사적 맥락 속에 배치한다. 특정 연도를 축으로 당대의 음악적 사건들을 병치하는 방식이다. 실내악을 시간의 예술로 재해석하는 SSF 특유의 기획 전략이다.
이번 축제에는 강동석 예술감독을 포함한 82명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한다. ‘실내악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한 ‘실내악 장인들’이다. 특히 올해는 유튜브 1억6000만 뷰의 주인공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첼리스트 김정아 등 평균 연령 15세의 영재들이 선배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영재’ 모차르트의 환생 같은 한국의 영재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실내악을 통한 세대 간의 교감과 전승이라는 축제의 가치를 보여준다. 강 예술감독이 이끌어온 이 축제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SSF는 그간 ‘관계의 음악’을 지향해왔다. 독주가 아닌 앙상블, 경쟁이 아닌 호흡을 통해 세대의 연속선에서 음악을 바라봤다.
강동석 예술감독은 “모차르트는 모든 음악가에게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자 기준”이라며 “이번 축제를 통해 천재들의 번뜩이는 영감과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음악가의 열정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