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회] 박진흥 개인전, 이미 거기 있고 깊어질 뿐인 그 빛들

박 작가 ‘빛이 여무는 자리’ 전시회
5월21일부터 6월21일까지 한달간
전시장소는 강남 갤러리화이트원
작가의 빛방울 철학 한단계 확장


5월 21일 오픈하는 박진흥 개인전 ‘빛이 여무는 자리(Where Light Ripens)’ 전시 작품 중 하나. (박진흥, 빛방울 – 풍향, 130x162cm, Oil on Canvas, 2026)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나는 오랫동안 빛을 쫓아다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의 각도, 나뭇가지 사이로 무너지는 오후, 저물녘의 공기가 두꺼워지는 방식. 그것이 어디서 오는가보다, 어디로 가라앉는가에 나는 더 오래 시선을 두었다. 빛이 사물 위에 닿는 순간이 아니라, 사물 안으로 스며들어 무르익는 그 느린 시간. 나는 줄곧 그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 이번 작업들은 그 욕망의 흔적이다.”(박진흥 작가 노트)

갤러리화이트원이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박진흥 작가의 ‘빛이 여무는 자리(Where Light Ripens)’ 개인전을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21일까지 한달간 연다. 서울 강남구 라움아트센터 1층 갤러리화이트원에서 열리는 박진흥 개인전 ‘빛이 여무는 자리’에선 ‘빛’이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시간의 층위 속에서 물질화하려는 작가의 회화적 시도를 조명한다.

앞에서 소개한 작가노트에서처럼 박 작가의 빛에 대한 철학은 명료하다. 박 작가는 “빛은 오지 않는다. 이미 거기 있다. 다만 깊어질 뿐이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빛은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축적되고 내면화되는 존재에 가깝다. 이같은 인식은 화면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레이어, 흔적, 미세한 색의 변주를 통해 구체화된다.

작품은 얇고 투명한 유화 물감을 수차례 중첩시키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이 반복적 행위는 단순한 색의 축적이 아니라, 지나간 빛의 시간을 화면 위에 침전시키는 과정이다. 겹겹이 쌓인 물감층은 특정한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밀도를 만들어낸다. 화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점과 얼룩, 이른바 ‘빛방울’ 역시 이러한 시간성을 확장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통제와 우연 사이에서 생성된 흔적들은 빛이 번지고 스며드는 방식을 닮아 있다.

화면 위에 드러나는 나뭇가지의 형상은 현재의 대상이라기보다, 과거 어느 순간 빛에 의해 드리워졌던 그림자의 잔상에 가깝다. 가지의 형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이 변질되거나 희미해지며, 때로는 빛과 동일한 상태로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거칠게 형성된 마티에르 위에 얹힌 가지의 선들은 단순한 평면적 이미지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빛이 머무는 경계적 공간을 암시한다. 이는 완전히 소멸되지도, 완전히 현재에 속하지도 않는 시간이 응축된 중간 지점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흰색의 크로스는 화면 전체에 이질적인 긴장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요소가 무의식적 흐름과 우연성 속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이 기호는 작가가 의식적으로 개입한 ‘결정의 순간’을 상징한다. 꿈과도 같은 비의식적 층위 위에 놓인 명확한 표식은 시간 속에서 특정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지점을 드러내며, 화면의 구조를 다시 환기시킨다.

박진흥, 빛방울이 떨어진 그 날, 41x32cm, Oil on Canvas, 2026


이번 전시는 이전 작업에서 제시됐던 ‘빛방울’의 개념이 한 단계 확장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과거의 작업이 빛의 생성과 시작점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업은 그 빛들이 축적되고 서로 스며들며 하나의 깊이를 이루는 과정을 다룬다. 다시 말해 ‘빛이 여무는 자리’는 빛이 ‘여무는 시간’에 대한 회화적 탐구다.

박진흥의 회화에서 빛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면 내부에서 생성되고 숙성되는 존재로 자리한다.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 사라져가는 형상의 잔상,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 속에서 빛은 하나의 장소로 수렴한다. 그 장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듯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깊이의 자리다.

전시 기간은 5월21~6월21일, 전시 장소는 갤러리화이트원, 관람시간은 오전 11시~오후 6시. 휴관일은 월요일, 금요일.

■박진흥은=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 화백의 손자이자, 화가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술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작가다. 인도 델리대학교 서양화과와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ㆍ인도ㆍ호주를 기반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1998년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학교 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시드니, 양구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를 거쳐 현재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하며, 박수근 화백으로 이어지는 한국 회화사의 예술적 유산을 동시대적 회화 언어로 이어가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주호주한국영사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뉴델리대학교 등에 소장돼 있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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