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허남준 캐스팅은 ‘오뉴월의 서리’ 같은 기적” [인터뷰]

‘멋진 신세계’ 한태섭 감독·강현주 작가
판타지적 설정에도 “리얼리티가 핵심”
사료 고증으로 조선 후기 절제미 구현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하나를 이루기도 벅찬데 모두 해냈다. 최고 시청률 14%를 돌파한 흥행과 넷플릭스 글로벌 1위라는 성과는 시청자를 설레게 한 로맨스와 웃음을 자아낸 코미디, 그리고 진정성과 감동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조선 악녀’의 중독성 강한 밈(meme), 수많은 시청자의 밤잠을 설치게 한 손목 키스 신, 집요할 만큼 공들인 조선 후기의 고전미까지. 작품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빛을 발했기에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더욱 크다.

신인 작가로서 과감한 서사를 밀어붙인 강현주 작가와 이를 완성도 높게 구현해 낸 한태섭 감독으로부터 지난달 20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제작 비하인드를 들어봤다.

“밤바다의 등대 같은 마음…안도가 된 작품”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두 사람은 먼저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작품을 마친 소회를 밝혔다. 흥행의 기쁨보다 ‘안도’를 이야기한 두 사람의 답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강현주 작가는 “스스로 보고 싶은 서사와 인물을 마음껏 썼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그 이야기를 사랑해 주셔서 뭉클하다”며 “어두운 밤바다를 홀로 표류하다 등대가 품어내는 한 줄기 불빛을 만난 것처럼 안도가 된다. 이 빛을 따라가면 뭍으로 향할 수 있겠다는 작은 확신을 시청자분들께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태섭 감독 역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이어진 반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투병 중인데 이 드라마 덕분에 웃음이 터지고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시청자분의 반응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있다는 걸 느꼈다. 추운 겨울 오랫동안 고생한 스태프들에게도 작은 보상이 된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고 전했다.

작가와 감독이 입을 모아 꼽은 ‘멋진 신세계’의 인기 비결은 작품과 촬영 현장 곳곳에 넘쳐났던 ‘사랑’이었다.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강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원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 안에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며 “대본의 결을 지켜주면서도 현장의 에너지를 더해준 한태섭 감독님, 임지연·허남준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어 “신인 작가인 저를 믿고 함께해준 제작진에게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한 감독은 따뜻한 주제를 뿌리로 한 이 드라마를 ‘나무’에 비유했다. 그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도 버티다 보면 결국 행복이 찾아온다는 단순하지만 따뜻한 메시지가 작품의 뿌리”라며 “스태프들의 노력이 줄기가 되고, 배우들의 호연과 앙상블이 잎이 되어 풍성한 이야기의 꽃을 피웠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이라는 과실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짜 같지 않길 바랐다”…판타지 위에 쌓은 리얼리티

‘멋진 신세계’는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로맨스다. 자칫 공중에 붕 뜰 수 있는 ‘타임슬립’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주인공들이 단단히 땅을 딛고 설 수 있었던 것은 시대성과 현실성에 무게를 둔 집필과 연출 덕분이다.

강현주 작가는 “판타지라는 장치를 통해 과거의 인물을 현대로 소환하는 서사는 자칫 공중에 붕 뜬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기에 최대한 개연성을 살리고 싶었다”며 “이미 많은 선례가 있는 타임슬립물의 익숙한 통과의례는 과감히 덜어내고, 이야기의 추진력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현대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웃음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설정도 최대한 지양했다. 대신 주인공 신서리(임지연 분)가 과거에서 왔지만 누구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서길 바랐다.

강 작가는 “인물들이 시청자들에게 실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다가가길 바랐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입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남자 중의 상남자, 누구보다 MZ다운 조선 여자,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내면에는 얼음조각 같은 연약함을 품은 모습처럼 상반된 지점들이 인물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한태섭 감독도 판타지라는 설정이 줄 수 있는 ‘가짜 같은 인상’을 최대한 지우고, 모든 영역에서 ‘진짜 같은 느낌’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무엇보다 캐스팅이었다.

한 감독은 “서리 캐릭터는 조선과 현대를 오가는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해야 했고, 차세계(허남준 분)는 코미디와 로맨스, 멜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필요한 인물이었다”며 “다행히 가장 원했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순간 작가님과 함께 ‘이건 됐다’며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감독이 추구한 리얼리티는 사극 파트의 고증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최대한 격조 있고 절제된 조선 후기의 미학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숙종실록을 바탕으로 설정한 ‘붉은 혜성’, 실존 유물을 모티브로 한 단심의 녹의홍상 등이 대표적인 예다. 요란한 퓨전 사극의 느낌을 덜어내고, 단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미장센을 구현하는 것이 연출의 핵심이었다.

한 감독은 “고증의 중요성은 한국 드라마의 위상과 파급력이 커진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대에 더욱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높아진 시청자들의 문화적 눈높이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임지연은 ‘심장’, 허남준은 ‘불’같은 존재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역시 ‘멋진 신세계’를 이야기하면서 두 주인공 임지연과 허남준을 빼놓을 수 없다.

강현주 작가는 “임지연 배우님은 드라마의 심장이자 동력이었다. 그 덕분에 작품이 엔진을 달고 힘차게 출발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작품을 온마음으로 사랑해주셨다”며 “한겨울 강행군 촬영 중에도 메신저로 대사의 한끝을 고민하며 질문을 보내오는 진심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태섭 감독은 “임지연 배우는 ‘멋진 신세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어 “5부 감전 엔딩 신에서 눈을 뒤집는 컷을 촬영한 뒤 ‘이 장면을 사용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해야 더 재밌지 않아요? 꼭 써주세요’라고 쿨하게 답하더라”며 “그 순간 시청자들이 서리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임지연이 작품의 ‘심장’이었다면, 허남준은 촬영장의 ‘불’이었다.

한 감독은 “허남준 배우는 외양은 단단하고 섹시한데 내면은 유쾌하고 말랑말랑해서 ‘이렇게 입체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언제나 온화하고 쾌활해 그가 촬영장에 오면 마치 ‘딸깍’ 하고 따뜻한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강 작가는 “허남준 배우는 서리만큼이나 난도가 높은 차세계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매력을 정확히 조준해 명중시켰다”며 “허남준이 아닌 차세계는 상상할 수 없다. 두 배우를 만난 것은 제게 ‘오뉴월의 서리’ 같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SBS ‘멋진 신세계’ [SBS 제공]

화제를 모은 ‘손목 키스’ 신의 비하인드도 공개했다. 제작진 역시 이 장면이 이처럼 큰 화제를 모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강 작가가 이 장면을 구상한 이유 역시 단순히 설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서리와 세계의 관계가 한 단계 변화하는 동시에, 서리의 내면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차세계는 서리에게 다시 한번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상황이고, 서리는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은 채 본능적으로 붙잡는다”며 “떠나려는 세계의 소매를 붙잡는 서리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손목 키스는 그 변화에 대한 차세계의 응답에 가까운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한 감독은 이 장면이 전적으로 작가의 설계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로맨틱한 분위기와 달리 실제 촬영 현장은 ‘혹한기 훈련’을 방불케 했다며 웃었다. 그는 “‘제 것이라는 인장을 찍듯’이라는 작가님의 표현을 최대한 온전히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신 적도 있었는데, 그 장면을 떠올리며 촬영했다”며 “서리에게는 여행지에서 느낀 충동적인 끌림을, 세계에게는 본능과 소유욕을 표현하되, 젠틀하게 상대의 허락을 단계적으로 확인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는 잃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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