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기자 협박한 광고주에 1면 톱기사로 ‘욕설’

[헤럴드경제=한영훈 기자]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FT)의 1면 톱 기사에 ‘Go Fuck yourself(엿먹어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경제신문이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황색신문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F자의 욕설을 제목으로 크게 뽑은데는 사실 이유가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FT)의 루시 캘러웨이 기자는 얼마전 대기업 휴렛 패커드(HT)의 CEO인 멕 휘트먼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


그러자 HP의 마케팅 담당자가 “당신의 칼럼에는 휘트먼 CEO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다. FT 경영진은 광고주에 대한 기사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해야할 것”이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캘러웨이 기자에게 보냈다. 광고를 뺄 수 있다는 간접적인 협박이었다.

HP 마케팅 담당자의 이 대응은 오히려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캘러웨이 기자는 HP 마케팅 담당인 헨리 고메즈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이메일 답신을 보냈다.

또한 FT는 이에 더해 신문 1면에 HP의 휘트먼CEO의 사진을 크게 싣고 ‘Go Fuck yourself(엿먹어라)’라는 원색적인 욕설을 제목으로 뽑아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수입 다각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과 방송등 미디어기업의 가장 큰 수입원은 광고다.

때문에 공익을 위한 건전한비판, 사회적 견제장치라는 언론사의 존재이유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른바 ‘광고주’의 돈을 의식해야 하는 신문사 경영진이 그같은 기사를 날 것 그대로 내보내게 하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광고주인 기업의 압력에 비판기사를 실었다가 빼거나 심지어 ‘사과’나 정정보도를 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번 FT의 대응은 ‘광고’라는 자본의 힘으로 언론을 압박하는 HP의 자세에 엄청나게 분노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광고를 앞세워 맘에 안드는 기사를 지적하는 건 이미 한물 간 ‘언론 길들이기’ 수법이다. 그걸 첨단 IT 기업의 마케팅 책임자가 사용했다는 점에서 FT는 문제의 심각성을 본 듯하다.

캘러웨이 기자도 반박 답장에서 “기업이 좋게 보이고 싶어서 만든 게 PR(홍보)인데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진이 광고의 ‘큰손’인 HP에 대놓고 욕설을 퍼부었는데도 가만히 내버려둔 FT경영진의 태도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주목하는 세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툭하면 광고주를 앞세워 기사를 넣어라 말아라하는 미디어업계의 일상이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참이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glfh20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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