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억달러 해외로 빠져나간 중국경제…1400억달러 유동성 긴급 처방

지난 18일 한 남성이 홍콩 M+현대미술관 앞을 걷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경기 둔화 장기화로 중국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투자 심리가 얼어 붙으며 증시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과 개인 자금 유출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하락과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 위기에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큰 폭의 지급준비율(이하 지준율) 인하를 단행하며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중국 국가외화관리국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중국 내 은행을 통한 기업과 개인의 해외 거래를 통해 687억달러(91조5084억원)의 자금이 순유출 됐다고 보도했다. 재화·서비스 무역이나 투자 활동 등을 포함하는 기업·가계의 해외 거래로 자금 순유출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5년만이다.

항목별로는 공장 건설 등 해외 직접 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이 두드러졌다. 닛케이는 “자금을 해외로 옮긴 주체가 외국 기업인지 중국 기업인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특히 외국 기업들의 중국 사업 철수가 자금 유출을 견인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 제조업 등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 수는 지난해 7월 약 20여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11월 기준으로도 전년동월 대비 0.4%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역시자금 해외 유출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중국 베이징의 한 건설 현장에 크레인들이 설치돼있다. [AFP]

부유층의 중국 이탈도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닛케이는 “부유층에 의한 자본 도피 행렬이 자금 초과유출 규모를 확대시킨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로 코로나 종료로 해외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한 것도 해외로 자금이 흘러나가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증시는 해외로 눈을 돌린 투자자 행렬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 주식의 시장 가치는 2021년 정점 이후 6조달러(약 8000조원) 이상 손실을 기록 중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주식시장 등에서 이탈하는 자금까지 급증하자 4개월만에 지준율 인하를 단행하며 경기 부양을 서두르고 있다.

전날 중국인민은행은 내달 5일부터 예금 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팡궁성 인민은행장은 기자회견에서 “지준율 인하로 시장에 1조위안(미화 약 1400억달러.한화 약 188조원)의 장기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인민은행은 지난해 3월과 9월에도 0.25%포인트 수준의 지준율 인하를 단행한 바 있지만 이처럼 인하폭을 키운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경기 부양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금융당국은 금리 조정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난해부터 지준율과 중기 정책금리 조정 등 정책 도구를 활용해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인민은행 전경. 인민은행은 24일 예금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함으로써 시중에 188조원 규모의 장기 유동성을 공급키로 결정했다. [로이터]

중국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한 428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 투입도 검토 중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조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 안정화 기금을 조성하고, 중국증권금융공사와 중국후이진투자공사를 통한 3000억위안(약 55조8000억원) 규모의 국가 대표펀드로 주식매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지준율 인하 결정이 당장의 투자자 심리를 개선하는 데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투자은행 샹송앤코의 션멍 상무는 “지준율 인하를 서둘러 발표한 것은 이것이 (금융당국이) 시장 실패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도구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케빈 네트 토크빌파이낸스SA 아시아책임자는 “지준율 인하가 결정적 조치로 보인다는 점에서 투자 심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부동산 시장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정책이 없으면, 투자자들이 단기 시장 반등을 탈출의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