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 A씨는 빚을 남기고 사망했다. A씨의 배우자는 상속한정승인을 했고 A씨의 자녀들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얼마 후 채무자 B씨가 A씨의 배우자와 A씨의 손자녀들이 A씨의 빚을 이어 갚아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A씨의 손자녀들은 B씨에게 조부모의 빚을 갚아야 할까?
2023년 3월 전의 상황이라면 A씨의 손자녀들은 조부모들의 빚을 갚아야 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해당 판례가 변경됐다. 빚을 갚을 의무는 A씨의 배우자에게만 있다.
21일 법무법인 바른 상속신탁연구회는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빌딩 회의실에서 제97회 세미나를 열고 2023년 3월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발제를 맡은 이진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변시 9회)는 “대법원 다수 의견은 우리나라 민법이 제정 당시부터 배우자 상속과 혈족 상속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면서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다시 상속을 포기하면서 결과적으로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는 실무례도 많이 발견된다”고 했다.
일본의 사례도 예시로 들었다. 우리나라 민법은 혈족 상속과 배우자 상속을 각각 민법 제1000조와 제1043조에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1000조에 따르면 상속의 순위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 순이다. 배우자 상속은 1043조에 규정돼있다. 1000조에 따른 상속인과 ‘공동상속인’이 되고 상속인이 없을 때만 단독상속인이 된다.
이같은 구조는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일본은 이미 이같은 규정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윤진수 서울대 법전원 명예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1962년 민법 939조 2항(민법 1043조 해당)을 삭제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7년 같은 사안에서 배우자만이 단독상속 한다고 판시했다”고 했다.
이어서 왕은재 변호사(변시 11회)는 유류분 반환의 순서를 주제로 발표했다. 왕 변호사는 유증재산(유언에 따른 재산) 반환을 우선시 한 2013년 대법원 대법원 판결을 제시하면서 “이같은 방식은 공동상속인 간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류분이란 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배우자, 자녀 등이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재산을 의미한다. 사망자가 특정인에게 유산 전부를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겨도 가족들은 유류분 제도를 활용해 일부 유산을 받을 수 있다.
왕 변호사는 4명의 자녀 중 1명의 자녀가 한푼도 상속받지 못해 나머지 3명의 자녀에게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하는 경우 3명 자녀의 분담 방식을 예시로 들었다. 기존에는 유증재산과과 증여재산을 합한 특별수익액을 기준으로 청구된 유류분을 나누면 됐다.
그런데 2013년 판례는 ‘유증’을 기준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3명의 자녀가 각각 동일하게 4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아도, 유류분을 반환할 때는 ‘유증’으로 받은 재산이 많은 자녀가 더 큰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왕 변호사는 “민법 제1116조에 유증을 반환받은 후에 증여를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면서도 “특별수익이 동일하더라도 재산을 사망 전에 받느냐, 후에 받느냐에 따라 반환 금액 차이가 커질 수 있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