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래가 이토록 찬란할 줄이야”…‘막춤’으로 세계 홀린 그녀들 [인생은 일흔부터]

안은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주역
70대 교사 출신 전점례·정유옥 씨
교단 떠나 ‘몸치’에서 ‘댄싱퀸’으로
“늙었다고 끝?…춤추며 진짜 나 만나”


안은미댄스컴퍼니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원년 멤버 전점례씨(왼쪽)는 “70대에 춤을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용필의 ‘모나리자’가 심장을 울리고,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무대. 바람에 나부끼는 여린 잎사귀 같고, 터질 듯 벅차오르는 꽃망울 같은 몸짓들이 무대를 유영한다. ‘엘리트’ 프로 무용수들 사이에서 춤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이 ‘막춤’이 시선을 낚아챈다. ‘연륜’이 빚어낸 소울(Soul)이다. 천진하게 웃는 주름진 얼굴 위로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꿈 많던 단발머리 소녀, 삶의 무게를 이고 달린 워킹맘….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서서히 퇴장하려던 그때, 그들은 ‘진짜 나’를 위한 무대를 만났다.

“춤이란 걸 춰본 적도 없어선지 (무대는) 우리 생활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곳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유랑극단인데, 그냥 왠지 한 번 가보고 싶더라고요. 도대체 저긴 어떤 곳일까, 궁금했어요.” (전점례)

두 사람은 ‘학교’라는 틀에 박힌 세상에서 평생을 보냈다. “어릴 적엔 배우러 다녔고, 사회에 나와선 가르치러 다녔다”는 전점례(79), 정유옥(77) 씨에게 무대는 ‘미지의 세계’이었다.

40여 년 잡았던 교편을 내려놓고, 장성한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 것을 소소한 낙(樂)으로 삼아 보내던 어느 날, 둘에게 운명 같은 이벤트가 찾아왔다. 안은미컴퍼니에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출연할 70세 이상 일반인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딸의 권유를 덥석 낚아챈 그해가 2016년이었다. 노년의 근심이나 두려움은 접어뒀다. 용기 있게 뛰어든 무대는 70대 청춘들의 ‘인생 2막’을 여는 서곡이었다.

무용계 대모 안은미의 무용 인류한 시리즈의 일환으로 2016년 시작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70대 이상 일반인 무용수의 막춤을 통해 우리 춤의 파격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공연의 최다 출연자 중 한 명인 전점례씨(왼쪽)는 40여년간 교사로 생활하다 난생 처음 무대에서 춤을 추며 해외 순회공연을 다녔다. [본인 제공]


이들은 ‘무용계의 대모’ 안은미가 ‘픽(Pick)’한 걸출한 원년 멤버다. 안은미의 ‘무용 인류학 시리즈’의 일환인 이 작품으로 70대 아마추어 무용수는 전국 순회는 기본, 전 세계를 누볐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2000석 극장을 기립박수로 채우고 독일과 스페인의 관객들을 울고 웃게 했다. 명실상부한 ‘노년의 K-무용 전도사’다. 지난해엔 오랜만에 한국 무대(전주)에 올랐다. 교탁 아래 봉인된 본능은 스멀스멀 비집고 나와 세월을 흔들었다. 그러자 ‘막춤’은 이들의 인생 기록이자 대체 불가한 예술이 됐다.

‘파워 70대’ 정유옥 씨는 헤럴드경제와 만나 “우리 춤은 연습도 필요 없다”며 “잘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움직임을 꺼내놓는 것이기에 부담 없이 즐겼다”고 돌아봤다.

“음악이 나오면 그냥 몸을 던지는 거예요. 잘 추려고? 아니, 우린 그런 거 몰라. 내 몸속에 흐르는 조상님의 DNA가 시키는 대로 흔들 뿐이죠.” (전점례, 정유옥)

체면을 벗고 ‘흥’을 입다…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집에서는 엄마, 밖에선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은 4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점잖은 선생님’이었던 엄마들이 ‘춤추러 간다’고 선언하자 가족들도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이내 자식들은 “우리 엄마 정말 용감하다”며 응원했다.

낯선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마냥 꽃길은 아니었다. 40년 세월 동안 몸에 밴 ‘교사’라는 사회적 옷을 벗어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로 막춤의 세계를 만나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정유옥 점점례씨 [본인 제공]


“학교 직원들끼리 장기 자랑을 할 때도 뒤로 빼던 사람이었어요. 빨리 나를 버려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버려지더라고요. 내 안에 꿈틀거리는 흥은 있는데, 체면인지 자존심인지가 발목을 잡았죠. 그런데 여긴 다르더라고요. 나이를 먹으니 용감해지기도 하고, 비로소 껍데기를 벗겨낸 거죠.” (전점례)

‘친구 따라 강남’ 온 정유옥 씨는 사실 막춤 깨나 추던 ‘재야의 고수’였다. 그는 “관광버스 타고 놀러 갈 때면 하도 춤을 춰서 여기저기 멍이 들곤 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 초등학교 재직 시절엔 장기 자랑으로 ‘산토끼’ 상까지 휩쓸었다. “내가 원체 좀 명랑하게 살았어요.” (정유옥)

안은미를 만나 무대에 선 두 사람에겐 기적이 찾아왔다. 화려한 조명을 타고 귀에 익은 선율이 흐르자, 몸은 이성이 통제를 벗어났다. 전문 무용수와 달리 칼군무도, 무한 반복하는 리허설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의 춤엔 삶의 질곡과 희로애락이 묻어났다. “그냥 재밌게 추면 된다”,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는 안은미의 독려는 두 사람을 춤추게 했다.

“평범한 내가 조명 아래서 춤을 추는데,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어요. 그저 몸을 흔들었는데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내 안에도 우리 조상님들이 물려준 흥, 그 끈질긴 DNA가 살아있구나. 억누르고 살았을 뿐 죽은 게 아니었구나.” (전점례)

“엄마, 우리 나갈 차례야”… 세계가 반한 막춤, ‘K-할매’의 저력


삶의 궤적도, 사연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나보다 남편과 자식을 먼저 돌보느라 정작 ‘나’는 뒷전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박힌 딱딱한 굳은살처럼, 삶의 고단함은 흔적이 돼 곳곳에 남았다.

무대는 그런 ‘할매’들을 무장해제했다. 사회적 가면을 벗자 ‘춤이 별거냐’는 배짱이 생겼다. 정유옥 씨는 “우린 그냥 소풍 가듯 즐겁게 다녔다. 아들딸 같은 젊은 무용수들이 ‘엄마’라고 부르며 손을 잡고 이끌어주니 틀릴 걱정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안은미의 무용 인생에서도 변곡점이 된 작품이다. 프로들의 매끈한 춤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막춤’이 관객의 심장을 속수무책으로 후려친다. 주름진 손끝의 떨림, 박자를 놓치는 엇박의 스텝 하나에도 파란만장한 대하소설이 적힌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원년 멤버인 정유옥, 전점례 씨. [본인 제공]


‘K-할매’들의 막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도 사로잡았다. 전점례 씨는 “프로방스의 2000석 대극장을 꽉 채웠을 땐 정말 짜릿했다”면서 “정명훈 지휘자 같은 거장이나 매진시키는 곳이라는데, 우리가 기립박수를 받으니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가슴에 태극기는 달지 않았지만,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었다.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했다. 헝가리에선 김밥을 말아 K-푸드를 알렸고, 체코에선 대사의 만찬 대접도 받았다. 정유옥 씨는 “단지 할머니 춤만 춘 게 아니라, 한국의 흥과 문화를 알린다는 긍지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공연 중에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쏟아진다. “무용수들이 감전된 것처럼 파닥거리는 장면이 있어요. (우린) 근엄하게 있어야 하는데, 앞에서 그러고 있으니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에요. 관객들은 우리가 심오한 연기를 하는 줄 알지만, 사실 웃음 참느라 표정이 일그러진 거예요.(웃음)”(정유옥)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칠순에 찾은 봄날


두 사람의 모험심은 황혼 무렵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써 내려온 지난 시간은 늘 세상의 편견과 벽에 맞서는 투쟁이었다.

‘딸은 살림 밑천’이라 불리던 시절. 전점례 씨는 드라마 ‘아들과 딸’의 실사판 같은 유년기를 보냈다. “오빠들은 다 학교에 갔는데 막내딸이라고 안 보내줬어요. 등록금 구해오면 보내줄까 싶어 열네 살 꼬마가 모 심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죠.” (전점례) 대담하게 제 길을 개척했던 소녀는 군산에서 전주 교대로 ‘유학’ 온 유일한 학생으로 성장했다. 그곳에서 정유옥 씨를 처음 만났다. 대학 땐 얼굴만 알았지만, 그 뒤로 긴 날들이 둘을 ‘단짝’으로 만들었다.

교사가 된 후에도 시련은 있었다. 전점례 씨의 인생 역정은 반전 드라마 그 자체다. IMF 외환위기 땐 ‘늙음의 설움’도 피할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나가야 젊은이들이 산다”는 잔혹한 경제 논리가 학교 담장을 넘었기 때문이다. 50대 초반이었던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늙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더라고요. 1년쯤 놀았나? 그런데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오기로 다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전점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안무가 안은미(중앙 앞열)와 무용수들 [안은미컴퍼니 제공]


주변에선 “미쳤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보란 듯이 교단으로 돌아갔다. 퇴직까지 남은 4년을 위해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다시 뚫었다. 그 때가 58세였다. 2009년 정년퇴임은 그에게 단순한 은퇴가 아닌 승리의 기록이었다. “그때 복직한 건 제 인생의 복권 당첨이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존심을 지켰으니까요. 그런 ‘깡다구’가 있으니 일흔 넘어 춤바람도 날 수 있었던 거죠.(웃음)” (전점례)

정유옥 씨는 ‘디지털 신인류’다. 퇴직 후 독학으로 컴퓨터와 영상 편집을 마스터해, 투어 때마다 100편이 넘는 ‘투어 무비’를 제작했다. 70대 후반인 지금도 피아노 앞을 기웃거린다.

두 친구는 춤을 추며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이들에겐 진부하지 않다. 춤을 만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는 70대 ‘댄싱퀸’의 리듬은 봄날처럼 화사하고, 여름처럼 뜨겁다.

“이전엔 우리 인생이 정년퇴임으로 끝난 줄 알았어요. 그 뒤는 그냥 덤이라고 생각했죠. 내 미래가 이토록 찬란할 줄 알았더라면 덜 걱정하고, 더 신나게 살았을 텐데 싶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하루하루가 즐겁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가슴이 뛰니까요. 우리 나이, 지금도 딱 좋아요.” (전점례, 정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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