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싱글> 9. 뷰렛 ‘성냥팔이 소녀’ㆍ피타입 ‘광화문’ 외 2곡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뷰렛(Biuret) ‘성냥팔이 소녀’= “잠을 설치며 눈물 뿌리며/바람마저 할퀴어 어디로 가야 할까/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매력적인 밴드 뷰렛의 반가운 컴백작입니다. 뷰렛의 멤버들은 지난 2011년 ‘굿바이(Goodbye)’를 내놓은 뒤 개인 활동에 집중해왔습니다. ‘굿바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마치 밴드의 끝을 암시하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들렸었는데, 이번 싱글은 그런 생각을 기분 좋게 접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합니다.

이번 싱글은 ‘웃지 않는 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그레텔’ ‘눈의 여왕’에 이은 5번째 동화 연작입니다. 다음 마디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구성과 편곡, 무거우면서도 멜로디를 놓치지 않은 사운드와 다채로운 목소리의 조화는 한 편의 매력적인 잔혹동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잔혹동화여도 팬들에겐 밴드의 활동 중단보다 잔혹한 일은 없었겠죠. 팬들의 마음을 아는 듯, 뷰렛은 오는 4월과 5월에도 싱글을 연달아 발표할 예정이라는군요.

▶ 피타입(P-Type) ‘광화문’= “더 이상 광화문엔 달달한 연가 따윈 어울리지 않아/허무한 묵념과 험한 명령과 위험한 생각뿐/수많은 바쁜 사람들/도박꾼처럼 행복과 바꾼 행복들/또 가끔 책을 읽다 ‘자살’과 ‘살자’가 뒤집혀/꽁지뼈에 불 지펴놓은 듯 불안하고 역겹지/거리는 역겨움과 항상 엮였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화문이 베테랑 래퍼에겐 이런 공간이었군요. 피타입이 10~20대를 보낸 장소에 대한 회상을 담은 곡‘광화문’은 냉정함을 넘어 섬뜩합니다. 이 곡은 피타입의 정규 4집 ‘스트리트 포이트리(Street Poetry)’의 선공개곡입니다. ‘거리의 시(詩)’라는 야심만만한 앨범 타이틀을 설명하는 데엔 글보다 랩 한 줄을 더 소개하는 게 낫겠군요.

“반강제로 수긍한 이 시스템/시스템 위에 시스템이 낳은 시스템/권력이 거리에 미메시스된 피라밋 같은 건물들/그 속에서 곧 물들거나 늙을 어린아이였던 속물들/귀찮아도 눈을 떠, 삐걱대면서 버텨/과연 이러는 게 똑똑한가?/하루는 비참하고 다른 하루는 비겁해/오늘 난 옛날의 나에게 떳떳한가?”

▶ 버고(Virgo) ‘아니지금?’= “술을 마시자니 텅 빈 뱃속이 이제 아파오는데/길을 나서자니 내 마음 속이 너무 젖어드는데”

버고는 서울전자음악단 출신 김정욱과 이한별로 구성된 팀으로 지난 1월 셀프타이틀 싱글을 발표하며 데뷔했습니다. 버고의 데뷔 싱글의 수록곡 ‘처녀자리에서 온 여인’은 댄서블한 록 사운드와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의 몽환적인 목소리로 ‘피겨여왕’ 김연아의 춤사위를 매력적으로 그려냈었죠.

버고의 두 번째 싱글 ‘2’의 수록곡 ‘아니지금?’에 목소리를 보탠 주인공은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입니다. ‘홍대 여(자 댄싱 머)신’으로 유명한 한희정이지만, 그의 서늘한 목소리는 사실 ‘우리 처음 만난 날’ 같은 밝은 곡보다 다소 어두운 곡에서 매력적이죠. 몽환적으로 퍼져나가는 전자음 속에서 한희정의 목소리는 전자음보다도 더 무심하지만 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처녀자리에서 온 여인’ 같은 춤사위가 없어도 이 곡은 무척 관능적입니다. 데뷔 싱글 이상으로 매력적인 싱글입니다.

▶ 강아솔 ‘하도리 가는 길’= “하도리 가는 길 멈춰서 뒤를 보네/아무도 없는 이 길에 나 혼자만/텅 빈 파란 하늘 가끔씩 부는 바람에/슬픔도 잠시 가던 길을 다시 가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과 베이시스트 이원술이 제주도를 소재로 만든 음악을 발표하는 ‘올댓제주’ 프로젝트는 잔잔하지만 매력적인 연작입니다. ‘올댓제주’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된 싱글 장필순의 ‘애월낙조’, 정준일의 ‘짝사랑’, BMK의 ‘바람의 노래’는 제주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제주의 매력을 환기시킨 곡들이었죠.

이번 ‘올댓제주’의 주인공은 제주가 고향인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입니다. 이 곡은 아직 남아 있는 제주의 옛길을 따라 하도리 마을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간소한 피아노와 현악 편곡 위에 실린 강아솔의 담담한 목소리는 제주의 옛길을 경험해보지 못한 뭍사람들을 편안하게 길로 안내합니다. 옛길을 찬찬히 더듬는 가사가 아련하게 들립니다. 하도리 가는 길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의 힘 덕분일 겁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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