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TV 실시간 시청 디바이스 TV패드 판매 송두현씨
월간지 ‘미디어저널’ 발행인으로 2년전 불쑥 등장..방송 3사와 ‘일전 불사’ 당당
돈키호테라 쓰여 있으면 우리는 괴짜라 읽는다. 비정상과 몰상식을 아우르는 듯하지만 기실 지극히 보통인 대다수가 언감생심 시도조차 생각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지난 2012년 10월 ‘미디어저널’이란 이름의 잡지가 LA한인사회에 등장했다. 아무런 홍보나 선전도 없이 슬그머니 창간됐다. 요즘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x)이었다. 대표자인 발행인겸 편집인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송두현…?
“커뮤니티의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동포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데 앞장서겠다”는 송 대표의 창간호 권두칼럼으로 봐서는 여타 언론사의 명분과 다를 게 없었다.
괴이한 것은 그 잡지의 모든 광고페이지에 한인타운의 허다한 업소는 단 한곳도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광고가 세계적인 명품이라는 사실이었다. 카르티에,아르마니,루비통,펜디…이 엄청난 명품광고를 실제로 계약했다니…? 책자에 소개된 전화번호를 돌려 송두현 대표를 찾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나자는 요청에 득달같이 달려왔다.
“아,명품광고들요…? 아유,말도 마세요. 그것들 계약 따느라고 정말이지 신물나게 뛰었습니다” 명문 뉴욕대(NYU)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를 전공할 당시 클래스메이트가 유명 광고에이전시에 취직한 덕분에 연줄을 만들어 다 제 발로 뛰어다니며, 제 손으로 광고계약을 했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면 순진하거나 바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얘기를 들을 수록 웬지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쳤다. 그렇게 그의 첫 인상은 어쩐지 ‘불온’스러웠다.
존재감이 의심스러운 월간잡지에 대한 관심이 시나브로 사라져갈 무렵 그가 또 득달같이 쳐들어왔다. 풍차를 향해 창을 겨눈 돈키호테의 저돌성을 퐁퐁 풍기며 그가 큰소리로 꺼낸 첫마디는 ”엄청난 물건을 팔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TV패드였다.
한국의 21개 지상파 채널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 ‘불온’한 디바이스였다. 300달러가 채 안되는 값에 거의 반영구적으로 한국의 넘쳐나는 TV 프로그램을 미국땅에서 한국에 있는 것처럼 리얼타임으로 언제 어느 때건 볼 수 있다는 물건.
“미주지역 동포들의 볼 권리를 위해 TV패드를 보급한다’고 했을 때 그가 실수를 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지적재산권과 저작권 침해가 어느 시대보다 칼바람을 일으키는 때에 재송신료 한푼도 안내고 방송사 프로그램을 공짜로 보게한다고? 화약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었다.
그로부터 넉달여가 지났다. TV 패드는 윌셔길 한복판에 거침없이 빌보드 광고판까지 세웠다. 한인사회 신문 라디오에 온통 광고로 도배질이다. 타임워너케이블 가입자가 아니어서 류현진이 던지는 LA다저스게임을 시청하지 못하게 된 가정과 업소는 앞다퉈 TV패드를 사들이고 있다. 한국 MBC가 중계하는 다저스게임을 실시간으로 보려는 것이다. 그 유명하다는 허구연씨의 해설까지 들을 수 있다니 말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때부터 날개를 달았지요.김연아의 피겨경기를 보려고 전화가 빗발쳤으니까요.” 소치의 성화가 꺼진 뒤 소강상태인 듯 싶던 TV패드 판매추세는 예상치 않게 다저스 중계방송을 LA주민의 7할이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또 한번 불이 붙었다.
다저스 중계권을 25년간 독점하는 대가로 25억8천만달러를 지불해야하는 타임워너 케이블이 디렉TV를 비롯한 다른 TV사업자들과 재판매 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채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서 공교롭게 TV패드 판매량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올 여름 브라질 월드컵 한국팀의 중계방송을 한국TV로 시청하려는 한인들이 또 한차례 구매열풍을 몰고 올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방송사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MBC와 SBS의 미국현지법인을 대리하고 있다는 이경원 변호사는 지난 2월부터 TV패드 판매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한인미디어를 대상으로 경고장같은 공문을 발송하고 있다.
“TV패드는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가공하거나 공급,전송할 수 없는 ‘공인받지 못한 기기(Unauthorised device)’”라는 것이며 “한국의 방송사들은 각국 방송사들과 협력하여 TV패드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불법적인 상거래행위에 적절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 있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만큼 TV패드를 광고하는 일은 불법적인 상거래 행위를 돕는 것으로 별도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경고가 덧붙여졌다.
지난 2012년 11월 16일 중국의 TV프로그램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송출하는 홍콩소재 TV유한공사(TVB) 미국법인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TV패드 제조사인 홍콩의 ‘크리에이트 뉴 테크놀로지 유한공사(Create New Technology Limited .이하 ‘CNT’)'는 TVB가 성명(statement) 형식을 취한 것보다 더 강력해보이는 수단으로써 ‘법률적 경고(Legal Notice)’를 통해 같은 날 다음과 같은 반박문을 내놓았다.
” TVpad는 본질적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는 장치로서 그 자체가 제3자의 어플리케이션이나 콘텐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TVpad는 최종이용자(엔드유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작동한다. 컴퓨터 사용자가 비디오게임같은 것을 하기 위해 제3자가 개발한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골라 설치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하략)”
TV패드는 안드로이드 운용체계를 바탕으로 TV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기기일 뿐이며 그 어플리케이션을 선택해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의 사용 행위를 제조회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며 나아가 저작권침해와 무관하다는 주장이었다.
친구가 산 강의 교재를 복사한 학생이 있다고 치면 그 학생이 불법복제의 책임이 있는 것이지 복사기를 만든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TV패드의 저작권 등 침해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판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방송시장 뿐 아니라 미디어산업계를 온통 흔들어놓고 있는 스트리밍 인터넷TV 업체 `에어리오(Aereo)`와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 간의 소송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상파 방송을 안테나로 수신해 가입자에게 인터넷으로 실시간 서비스하는 에어리오의 가입자들은 ABC, CBS, NBC 등 미국의 지상파 TV방송을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TV는 물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방송사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신들의 콘텐츠를 재송신료 한푼 안내고 가입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해적’같은 에어리오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법원은 에어리오 서비스에 대해 합법 결정을 내렸다. “가입자는 기본적으로 무료인 지상파 방송을 안테나를 통해 수신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에어리오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에어리오 관련 소송은 현재 미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대법원조차 하급법원의 판결을 지지해버리면 전세계 방송산업과 미디어업계는 일대 혁명을 맞게될 것이다.
지난 1984년 VCR이라는 영상녹화재생장치를 상대로 할리우드 영화산업계가 소송을 했던 전례가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제한 복사가 허용되는 VCR로 인해 영화산업이 위기에 몰렸다고 아우성쳤지만 법원은 오히려 영화산업이 혁신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대처하도록 요구했다. 오늘날 세계 영화산업이 엄청난 규모의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TV패드에 대한 합법성 시비는 아직 법적으로 가려지지 않고 있다. 꽤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판정날지도 모른다. 에어리오의 소송 사례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사이 TV 패드는 계속 팔릴 것이고, 송두현 대표의 판매대행사업도 호황을 누릴 것이다. “아이고, LA한인타운의 돈을 제가 다 긁어간다고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예요. 대박이라는 표현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송 대표는 기실 TV패드 장사가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저는 이 요물단지같은 기계를 문화라고 믿습니다. 인터넷 환경에서 작동하는 만큼 제가 직접 채널을 만들어 넣을 수 있거든요.”
TV패드는 미주한인사회에 5~6만대 가량 보급돼 있다고 한다. 중국 본토를 제외하고도 전세계 해외 한인사회및 아시안계 커뮤니티에 3백만대 가량이 보급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홈쇼핑이든 뭐든 어떤 콘텐츠이건 3백만명을 이미 시청자로 확보하고 있으니 무엇이든 전달할 수 있지요.두고보세요. TV패드는 하나의 문화가 될 겁니다.”
플랫폼의 시대라고들 한다. 종이와 전파가 전부였던 전통적인 플랫폼은 웹과 모바일 환경을 바탕으로 각종 소셜네트워크를 양산하고 있다. TV패드는 그처럼 다양하게 진보한 플랫폼의 하나로 일상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의 실행을 결정할 때 법적 도덕적 잣대가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일단 움직이고 볼 것인지는 사업자 각자가 판단할 몫일 것이다. 모두들 주저하고 망설일 때 거침없이 내지르고 있는 송 대표의 실행력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짙어진다.
잡지사 발행인으로 등장한 ‘뉴 키드 온더블락(New Kid on the Block)’이 내로라하는 기존 미디어와 사업가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도무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황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