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모두 찾을 때까지…” LA 분향소 지키는 두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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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앗간 제임스 김 사장(오른쪽)과 북가주에서 온 남관우씨가 지난 6일 LA총영사관 앞에 마련된 작은 분향소 앞에서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실종자가 모두 찾아질 때까지 분향소를 지킬 것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LA총영사관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세워졌다. 노란 리본과 메모지로 가득찬 테이블은 한인들 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길도 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테이블 앞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한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4일 후인 4월 20일 총영사관 앞에 하얀 천을 덮은 작은 분향소가 생겼다. 분향소를 마련한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남관우씨.

남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부사장이다. 그는 “몇년 전 동네 꼬마 한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자리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 한송이가 일주일 후에는 산더미같은 꽃다발로 늘어났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서 착안해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주말에 LA로 내려와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씨는 이 분향소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다. 새 친구는 LA 올림픽가에 위치한 ‘김방아’의 사장 제임스 김씨다. 김 사장은 LA코리아타운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김방아’를 1967년에 차린 고 김명한 옹의 손자다. 지난 2004년 김명한 옹이 103세를 일기로 타계한 이후부터 방앗간을 이어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그는 “처음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너무 아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 LA총영사관 앞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며 “그 자리로 바로 달려가 보니 몇명의 사람들이 작은 테이블 앞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추모하고 있었고 거기서 남관우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을 위한 마음과 그 슬픔은 서로 분명히 같이 느끼고 있다는걸 알았다는 김 대표는 그날 이후로 매일 남씨와 이 분향소를 밤 늦게까지 지키고 있다.

그들은 분향소 설치 후 2000여 명이 넘는 방문자에게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을 알리고 멀리서나마 그들의 기도를 모아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희망과 응원을 전해 주고 있다. 처음에 시작할때는 테이블 위에 초 3개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남겨준 꽃과 메세지 그리고 노란 리본이 작은 테이블을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 진다고 말한다.

김사장은 “매일 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었고 LA총영사관에서도 지원과 도움을 주었다”라며 고마워했다.

4월 26일과 5월 3일에 이어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리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 및 생환기원 촛불 모임에도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랐다.이들은 첫 주에는 200여명 정도 분들이 참여해지만 두번째 모임에는 참여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갈수록 세월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이 다 찾아질 때까지 관심과 기도가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남씨는 “일주일 정도면 다 찾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3주째”라며 “아직도 40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찾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한명도 빠짐없이 찾아질 때까지 매일같이 여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것”이라며 “내 자식들이 지금 세월호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실종자 부모님들은 마음이 얼마나 아플 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하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도 적어도 한명은 꼭 살아있을거라고 믿는다는 두 사람은 실종자들이 살아오기를 기원하며 슬퍼하기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해가 지고 다시 쌀쌀해졌다. 춥지 않으냐고 물으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저 차가운 바다 밑에서 두려움에 떨고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춥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황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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