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인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72번지. 한눈에도 럭셔리한 스테이크 하우스가 1층에 자리한 베이지색 빌딩 5층과 12층은 미국에서 ‘한류’가 가장 뜨겁게 생동하는 곳이다. 한국의 TV드라마를 K-드라마란 이름으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에 심어준 주역 ‘드라마피버(DramaFever)’ 헤드쿼터가 거기에 있다. 2008년 크리스마스에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2009년 8월 6일 공식적으로 론칭했던 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은 불과 6년여만에 시청자수 2천2백만명, 사이트 월간 평균 방문자수 350만명을 거느린 미디어로 성장했다. 80여개의 콘텐츠 제공파트너가 있으며 1만5천개가 넘는 에피소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지난 6년새 월스트릿저널, 뉴욕타임즈, 블룸버그, NBC,버라이어티 등 20여 유명 매체가 그들에 대해 전한 각종 기사들이 스크랩돼 있다. 로체스터 대학 선후배 사이인 박 석, 백 승 두 공동창업자는 2008년 초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을 가로질러 다니던 때를 잊지 못한다. “파워포인트로 멋지게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가면 방송사에서 환대해줄 줄 알았는데 가는 곳마다 ‘당신들이 누군데?’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데?’라는 식으로 로비 안내데스트 문지방도 넘지 못했다” 박 석씨와 드라마피버의 공동 CEO를 맡고 있는 백 승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MBC로부터 ‘커피프린스’와 ‘내 이름은 김삼순’ 등 20편의 드라마 송출 허락을 받아낸 게 2008년 11월. 방송사 문을 두드린 지 무려 8개월만이었다. 판권료는 편당 몇백달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드라마피버의 신화는 싹 트기 시작했다. 회사 출범 1년만인 2009년 8월 드라마피버 사이트에 가입한 등록회원수가 5만명이 됐다. “수익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광고수입을 창출하려면 20만명 정도 회원수가 되면 좋겠다고 여기던 그 무렵에 도요타로부터 첫 광고계약을 했지요. 1년 계약으로 받은 2만5천달러 광고비가 최초의 수입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이트 회원수는 그로부터 3년만인 2012년 1백만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말. 한국계 재일동포 손정의씨가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드라마피버를 기업인수 형식으로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인수자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1억달러의 현금이 박 석, 백 승 두 창업주에 안겨졌다고 전하고 있다. 창업 5년 3개월만이었다.
소프트뱅크가 회사를 인수한지 만 1년이 된 지난달 30일. 맨해튼 드라마피버 본사는 할로윈데이를 맞아 모든 직원이 각종 캐릭터 코스튬을 착용한 채 일하고 있었다. 소프트뱅크 이전에도 드라마피버는 유튜브 공동창업자 스티브 첸, 메이저 방송채널 네트워크 AMC(전 American Movie Classics) 등으로부터 수백만달러씩 투자를 받았다. 박 석 대표와 백 승 대표 외에 이들 투자자들은 소프트뱅크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모두 투자금의 8배 이상을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성공스토리는 결국 ‘한국 드라마를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자’라는 매우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한류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모델로서 드라마피버가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그렇군요. 소프트뱅크와 함께 한 지 1년이 됐네요. 열정을 갖고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이제 리스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할까요.” 회사를 매각한 이후 달라진 건 아무래도 누군가로부터 통제를 받고, 리포트를 해야 하는 책임과 부담이라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한국 드라마를 비롯, 각종 창작 콘텐츠를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마케팅해 보급하는 역할을 한 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고맙다고 강조한다. “메이저 플랫폼인 훌루(Hulu)와 넷플릭스(Netflix)에 K드라마가 당당히 독립된 장르와 섹션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거기에 독립된 섹션으로 분류된 콘텐츠는 영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 딱 둘 뿐이거든요.” 컨퍼런스나 비즈니스 미팅 등에서 상대 미국인들로부터 “요새 한국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다음 편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죽겠다”라는 얘기를 허다하게 들을 때도 고마운 느낌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그런 느낌을 공감하고 있어서 더욱 기쁘지요”
드라마피버의 홈페이지에는 ‘세상을 당신에게 더 가깝게(Bringing the world closer to you)’라는 모토가 크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을 더 가깝게’가 아니고 ‘세상을’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은 드라마피버의 서비스 대상과 영역, 나아가 비즈니스 전략이 한국 콘텐츠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선언이다.
2013년 중반 미국내 히스패닉계 최대의 네크워크 ‘텔레문도’와 저작권 계약을 하고 라티노 프로그램에 영어자막을 입혀 서비스하고 있는가 하면 영국의 드라마를 스트리밍으로 보급하는 일도 지난 8월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피버의 시작과 중심은 한국 콘텐츠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콘텐츠 전달 뿐 아니라 제작에도 손대고 있다. 2년전 히트 드라마 ‘상속자들’에 제작투자를 단행, 몇배의 수익을 거두었는가 하면 지난 여름 인기그룹 ‘빅뱅’의 미국 순회 콘서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보급하는 등 자체 콘텐츠 생산작업도 발동을 걸었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영어 자막 외에도 스패니쉬와 포르투갈어를 입히는 일도 올해부터 시작됐다.
데스크톱 PC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드라마피버의 한류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는 2013년 모바일 앱을 론칭하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모바일앱을 론칭한 지 8개월만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패드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이용자수가 PC사용자수를 넘어섰다.
“중남미 시장에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만에 그쪽 이용자수가 미국내 이용자수를 넘어선 사실과 모바일 사용자수가 PC사용자를 능가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드라마피버의 이용자 가운데 한국인은 영어권 2,3세 일부 외에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신 전체 시청자 가운데 40%가 백인계, 30%가 라틴계이며 15%가 흑인, 그리나 나머지 15%가 아시안으로 구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구성비는 한류 콘텐츠의 보급창구로서 드라마피버의 역할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중남미 시장은 아직 수익원으로서는 미국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 잠재력은 엄청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모바일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 전략은 드라마피버의 이용자층이 주로 밀레니얼 세대(18~34세)라는 점에서 다각도로 개발되고 있다. 드라마피버가 내놓은 4단계 구독(서브스크립션) 이용자 분류는 업계에서 여러모로 분석되는 정책이다.
드라마피버의 수익원은 광고와 구독료(유료가입자), 그리고 콘텐츠 재판매 등을 포함하는 신디케이션 수입 등 3가지 채널로 이뤄지고 있다. 광고수입이 절반을 차지하고 구독료 수입이 전체 매출에서 30%, 신디케이션 수입이 20%의 비중이다. 유료 회원을 늘려 구독료 수입을 늘리는 것은 안정적인 수익기반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련한 게 4단계(티어·Tier)회원분류 정책이다. 1단계는 무료 회원이다. 이들은 무료로 콘텐츠를 이용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광고를 함께 봐야한다. 2단계는 ‘루키’그룹. 월회비 0.99달러를 1년치 한꺼번에 내면 된다. 무료 회원에 비해 광고의 방해를 덜 받는다. 3단계는 ‘아이돌’ 그룹. 월 회비가 4.99달러. 4단계는 ‘슈퍼스타’그룹으로 월 회비 9.99달러(연 99.99달러)이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광고를 보지 않는 것 뿐 아니라 드라마피버의 각종 이벤트에 초대되는가 하면 캐릭터 상품 등을 구입시 할인 혜택을 받는 등 일체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콘텐츠를 쉽게 보여주고 전달해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는 박 석 대표는 “훌루와 넷플릭스 등 메이저 플랫폼 사업자들 외에도 아마존과도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등 비즈니스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외에도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모종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도 말해 드라마피버의 미래에 관한 기대감이 끊임없이 퍼져오르게 했다.
뉴욕/황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