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어머니의 빛나던 시절”..연극인 손숙 LA왔다

NISI20130201_0007669096_web어머니에게 첫사랑이 있었다면…? 뜬금없다고 여길 지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도대체 우리 엄마에게 첫 사랑이 있었다는 생각을 왜 하겠는가. 불편할 뿐 아니라 불경스러운 상상일 터이다.

“에이~.우리 어머니는 첫사랑같은 거 없어요.” 2일 LA코리아타운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중년의 한 기업인은 사뭇 얼굴까지 발그래해지며 손사래를 쳤다.

그 중년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연극배우 손 숙선생은 녹두전을 집으려다 말고  배시시 소녀같은 미소를 띠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들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빛나는 첫사랑일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하지요? 어머니들도 누군가의 심장을 떨리게 만든 눈부신 시절이 있었을텐데요.”

무대가 아닌 식당의 한 모서리에서조차 손 숙 선생은 연극의 대사처럼 또렷하게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연극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줄거리를 가졌어요.”

1999년 서울 정동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17년째 이어오고 있는 연극 <어머니>가 오는 6일 윌셔 이벨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한해 평균 4~5회씩, 지금까지 70여회에 달하는 이 연극의 주인공 역할을 한결같이 맡고 있는 손 숙 선생이다. 그는 지난 1일 LA에 도착, 각종 홍보행사에 자리하며 시차적응할 틈 없이 시간을 쪼개 남가주 한인사회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도착 이튿날인 2일에만 라디오코리아와 중앙일보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등 언론사를 순회하며 인터뷰를 가졌다. 점심과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후원기업의 관계자들을 만나 감사인사를 전하느라 바빴다.

3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윌셔은행 본점지점에서, 그리고 오후 3시부터는 윌셔은행 세리토스지점에서 각각 1일 명예지점장으로 초청돼 사인회를 겸한 홍보이벤트를 갖는다.

지난주까지만해도 서울에서 배우 신구씨와 함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보름 동안 공연했다. 그 사이에 한국 연극의 대부였던 고(故)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햄릿>을 원로배우들과 함께 국립극장과 공동제작하기로 뜻을 모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재능기부로 노개런티 출연한 영화 <귀향>이 4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자 쏟아지는 인터뷰에 응하느라 벚꽃이 언제 피고 졌는 지도 모른 채 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끝에 <어머니>의 LA공연을 위해 장거리 비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함께 무대에 설 연희단 거리패 단원 15명에 앞서 홀로 미국에 들어와 연극 홍보에 발품을 파는 일로 시차적응을 대신하고 있다. 칠십대 초반의 체력으로 감당하기에는 걱정스러울 정도의 강행군이다. 모노드라마가 아닌데도 ‘손 숙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대표작이어서인지 강한 애착심이 물씬거린다.

“정동극장에서 초연할 때 연출하신 이윤택 선생과 20년을 채우자고 약속했지요. 이 연극 때문에 장관자리에서 두달도 못돼 물러나기도 해 이래저래 애정이 갈 수 밖에 없어요”

손 선생이 연극 <어머니> 때문에 장관직에서 물러난 일은 한국의 정관계와 문화계에 걸쳐 워낙 유명한 에피소드다. 1999년 김대중 정부의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된 상태에서 이미 약속해두었던 러시아 공연을 치렀다.

현지 관객들로부터 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국의 재계인사들이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돼 무대위에서 건넨 격려금이 논란이 됐다. 결국 새 정부 출범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스스로 40여일만에 물러났던 사건이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연극 <어머니>가 손 숙을 배우로 돌아오게 해줬다며 그 일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긴다. <어머니>의 무대감독 김경수씨는 ” 손 선생이 장관을 그만두고 연극에 전념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연극을 위해 정말 축복”이라고까지 말한다.

“장관 자리와 바꾼 연극”이라며 손 선생 스스로도 그때의 일을 우스갯거리로 삼고 있지만 어찌됐건 <어머니>는 연극 인생 53년에서 가장 뚜렷한 대표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명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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