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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거나, 잘 모르거나, 별 생각이 없거나”
한인은행 대출 부서 직원들의 솔직한 자체분석이다.
최근 한인은행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대출이다. 올해 2분기 현재 10개 미주 한인은행들의 총 대출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약 4% 늘어난 235억1,350만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정은 녹록하지 않다.
실물 경기가 각 지표를 반영하지 못하며 한인은행들의 젖줄이 되어온 SBA대출이 감소했고 여기에 은행들 간의 지나친 경쟁 그리고 부동산 담보 대출의 위험성까지 높아졌다. 성장폭 역시 자본금, 예금, 자산 등 은행 주요 실적 중 가장 뒤처져 있다.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성장세가 어느새 한자릿수에 접어들었고 드디어 5% 선까지 무너졌다..
만약 경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2020년부터 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들며 부실대출이 늘어날 경우 하락세는 더욱 곤두박질할 전망이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치중되어 있는 한인은행들은 그 위험성이 더욱 높다.
얼마 전 자리를 함께한 일부 한인은행의 대출 부서 직원들은 “고객에게 돈을 빌리게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한인은행들은 타 은행에 비해 유독 유연성이 부족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무섭거나 ▲잘 모르거나 ▲생각을 강제한 혹은 강제 당한 자세가 대출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좀 더 세분해 설명해보자. 모 은행의 대출 직원은 “현재 한인은행들의 자본금은 40억달러가 넘었다. 자산규모도 커졌고 직원도 늘었다. 자산대비 자본금 또한 시장의 요구치인 6~8%를 5%포인트 이상 웃돌고 있다. 이 말은 곧 맘만 먹으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대출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특히 직급이 올라갈 수록 이런 대출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금액이 크니 혹시 잘못됐을 때 본인들의 자리가 위험할까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실제 대출금이 크고 위험성이 있었지만 가능성도 무궁무진한 대출 건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고객이나 사업 내용은 제쳐두고 실패 확률부터 물어보더니 곧 다른 건을 알아볼 것을 지시 받았다”라고 털어놓았다.작지만 확실하게, 길고 오래가는 안전주의가 DNA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상장 한인은행의 주요 간부조차 이런 안전주의가 팽배한 것을 인정했다
이 간부는 “당연히 머리로는 모험이 없이는 큰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라며 “하지만 순익, 예금, 대출 등이 감소하면 경영진, 주주 그리고 감독국 등으로부터 압박을 피할 수 없다 보니 모험과 안전 중 안전에 기우는 것”이라며 특히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도 올라가 생활패턴이 안정되면 더욱 변화를 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안전주의가 오래되다 보니 당연히 인력 인프라도 부족하다. 대출 경력 10년 이상인 한 베테랑 직원은 “큰 대출을 하려면 그 위험이 큰 만큼 이를 잘 알고 득실을 분석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한데 안전하게만 가려다 보니 전문노하우가 필요한 기업대출(C&I)나, 벤처 대출 등의 전문가를 영입하지도, 양성하지도 못한 것”이라며 “결국 큰 대출을 잘 모르고 무섭기까지 하니 드라마틱한 성장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타 인종 은행에서 한인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직원은 “한인은행이 서로를 잘 챙겨주는 인간적인 분위기에서는 더 일하기가 편하다”라며 “하지만 직원의 근무 형태만 따로 보면 무척 성실하지만 창의적으로, 주관적으로 일 하는 직원은 많지 않다. 몇 개월간 그 원인을 생각해 봤는데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라는 분위기에 젖었거나, 혹시 나름 대로의 생각이 있어도 ‘혹시 튀지 않을까’. 잘 안되면 혹시 인사고과에 영향을 받을까’와 같은 염려가 결국 행동을 제약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본인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게 하는 분위기 형성이 필요하며, 성과를 내는 직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덧붙였다. 대형 은행 및 중국 은행과의 이자율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것 역시 한인은행의 대출 사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