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총영사관이 5일 오전 ‘동포 언론사 당부사항’이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2일과 3일 LA지역 한인매체들이 보도한 LA총영사 교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총영사관의 홍보담당 정승범 실무관 명의로 보낸 전자메일이지만 총영사관의 공식적인 입장이 담긴 것임은 물론이다.
이메일은 ” 2020년 춘계 공관장 인사내정 사항과 관련, 외교부는 지난 3.2(월) 비보도 전제의 엠바고를 배포하고 백그라운드 언론 브리핑을 실시한바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이어 “이와 관련, 당지(LA총영사관 관할지역을 뜻함) 일부 동포언론에서 특히 LA총영사 인사내정 사항에 대해 엠바고를 무시하고 총영사관을 인용하거나 정치적 해석을 붙인 비판 기사를 보도하는 사례가 있는바, 아래 사항을 감안하여 당분간 보도에 유의, 협조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라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이어붙였다.
“-공관장 인사는 통상 춘계 및 추계로 나누어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이번 LA총영사 관련 인사내정 사항도 그 일환임. -현직 김완중 총영사는 문재인 정부 초대 LA총영사로서 그간 동포사회와 함께 동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어려운 현안 해결을 위해 일해 왔으며, 어느 정도 주요 현안에 대한 해결의 가닥이 잡힌 점을 감안하여 이번 인사시 본부 귀임을 사전 희망함 -이 점에서 정부차원의 인사관련 절차가 마무리되어 공식 발표시까지 LA총영사 이부임과 관련한 추측성 기사 보도를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림”
LA총영사관의 이같은 이례적인 이메일은 일부 매체에서 총영사교체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표현하고 신임 박경재 총영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 동문이란 점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해석을 달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로 작성된 듯하다.
일단 총영사관의 당부사항 가운데 사실확인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외교부가 3월 2일 엠바고를 배포하고 백그라운드 언론 브리핑을 실시했다는 내용부터 따져보자.
한국 외교부에서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그같은 브리핑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LA총영사관이 관할지역 한인동포 언론사를 상대로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부에서 한국내 출입기자단에게 엠바고를 걸고 브리핑을 했다면 그건 미국땅에서 활동하는 동포언론사와 무관하다.
무엇보다 총영사 인사내정이 엠바고를 걸만한 사안일까.
한국의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가 한국시간 3월 2일 오후 4시 12분(LA시간 3월 1일 밤 11시 12분)에 ‘주LA총영사에 박경재·휴스턴총영사에 안명수 임명’ 제하의 기사를 송고한 걸 보면 외교부의 엠바고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LA지역의 동포언론사들은 연합뉴스의 송고기사를 받아 3월 2일과 3일(화),또는 4일(수)에 걸쳐 잇따라 관련 내용을 기사화했다. ‘엠바고를 무시했다’는 총영사관의 표현은 근거 없는 셈이다.
‘정치적 해석을 붙인 비판기사’를 지적한 것도 마땅치 않다. 비판은 언론의 존재이유이고 해석 또한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언론의 본질적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LA총영사관측은 김완중 총영사가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귀임하게 됐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못마땅한 듯 공관장 인사가 춘계와 추계 인사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총영사가 몇달 빨리 교체된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신임 총영사의 경력과 대통령과의 인연 등에 비춰볼 때 누가봐도 ‘낙하산 인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포인트다.
무엇보다 세계 90여개국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한국인과 한국발 항공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부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진 LA총영사 인사였기에 갖가지 억측과 해석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대사급이 부임하는 LA총영사 인사가 이뤄진 3월 2일 온종일 입국제한 조치를 막으려 10여개국과 통화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는 사실은 외교부의 보도자료상에 나와 있다.
더 중차대한 외교업무가 산적한 마당에 3년 임기가 8개월 가량 남아 있는 LA총영사 교체 인사는 불요불급한 사안이다. 장관 보다 윗선에서 밀어붙인 인사라는 혐의가 짙어지는 대목이다.
LA총영사관이 이례적으로 ‘당부사항’이라는 내용의 전자메일을 발송해 인사발령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인식을 거듭 갖게 해주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안하느니만 못한 ‘당부’를 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