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앤비와 발라드의 중간 어디쯤. 발라드 듀엣이라고도, 알앤비 듀오라고도 정의하기 어렵다. 그저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 하나를 툭 던지는 음악들.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너무 애틋해 가슴속엔 파문이 일고 만다. 주로 ‘가창력 끝판왕’이라 불리고,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알렸다. 한두 해 부른 노래가 아니다. 어느덧 데뷔 8년차. ‘레트로’를 장착한 다소 촌스러운 이름 덕에 독특한 예명으로 오해도 받지만, 놀랍게도 본명에서 따왔다. 최근 서울 남가좌동의 한 카페에서 길구봉구를 만났다.
길구봉구의 2020년은 아직 허기로 가득 차있다. “음원을 자주 내는 편이 아니”라던 그들이 올 한 해 벌써 세 곡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전국 투어의 마무리였던 서울 공연이 무산된 아쉬움은 길구봉구의 추진력을 높였다.
“2월에 발표한 ‘어떤 기적’이라는 곡은, 저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곡이에요. 데뷔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저희가 함께한 지도 14년이나 됐어요.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나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곡이에요.”(봉구·34) ‘어떤 기적’이 서울 공연에서 ‘떼창’으로 불리는 기적 같은 시간도 상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게 딱 취소돼, 지금은 라디오에서 많이 부르고 있어요.(웃음)”(길구·37)
두 사람이 만난 건 2006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짝꿍을 만난 느낌이었어요.”(길구) 좋아하는 음악이 너무나 닮았고, 스타일도 비슷했다. “그땐 저희가 힙합 스타일을 선호했어요. (웃음) 같이 노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공감대가 쌓였죠.”(봉구)
이듬해 드라마 ‘날아오르다’의 OST를 부른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음악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데뷔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정식으로 계약한 소속사만 세 군데. 데뷔는 번번이 무산됐고, 사기도 당해봤다.
길구는 보컬 트레이너, 봉구는 백업싱어(코러스)로 생계를 꾸리며 근근이 버텼다. 사제지간으로 만난 아이돌 가수도 숱하다.
오마이걸, 에이티즈, 온앤오프 등이 길구의 제자들이다. 봉구는 이적부터 빅뱅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수들의 코러스로 참여했다.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할 순 있었어요.”(길구) “그래도 저희가 가진 역량으로 일을 할 수 있어 복이었죠.”(봉구)
데뷔는 2013년이지만, 길구봉구가 이름을 알린 건 2017년이다.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어’가 3년 만에 역주행하면서다.
동시에 그 무렵 발표한 ‘이 별’도 ‘차트 인’하며 길구봉구의 두 곡이 1년 넘게 멜론 차트를 점령했다. “두 곡이 차트에 나란히 있는 걸 보면서 우리는 평생 쓸 운을 다 썼구나 싶었어요.(웃음)”(길구) “정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다시 없을 행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봉구)
시간이 걸려도 ‘좋은 노래’는 통한다. 시적인 노랫말과 감미로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이제 길구봉구의 ‘시그니처’가 됐다. 봉구는 자신들의 음악을 “찌질한 따뜻함”이라고 표현했다. 길구가 금세 제동을 건다. “찌질한 거 말고 애잔함으로 바꾸자. (웃음) 구질구질하지 않은 따뜻함, 슬프진 않은데 울먹이게 하는 애틋함이 있어요.”(길구) “소리 내 웃는 것보다 미소 짓게 만드는 음악이요.”(봉구)
20대 초반에 만나 어느덧 14년. 무대 위에서 만큼은 천생연분이다. “보지 않아도 숨소리까지 기억”하며 “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부르는” 노래다. “노래하는 것 빼고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장난스레 이야기하지만, 두 사람은 가요사에 이름을 남길 남성 듀오이길 꿈꾼다.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문세 선생님의 공연에 가요. 오랜 시간 음악을 하면서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는 건 모든 가수의 꿈일 거예요. 길구 형과 저도 그렇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봉구)
“15년 뒤에도 지금과 큰 차이 없는 음악을 하면서, 더 깊은 소리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길구) “나이가 든다고 나이 든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봉구) “감성은 짙어졌지만,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저희 바람이에요.”(길구)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