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건물주 속이는 ‘불쌍한’ 세입자

“장사가 잘 되는데 렌트비가 없다니…!”

얼마 전 한 세입자와 자리를 함께 한 건물주 P씨.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끓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P씨의 얘기는 이렇다. 다수의 스트립 몰을 보유한 P씨는 최근 변호사, 그리고 건물 관리 업체 관계자와 함께 각 세입자에 대한 렌트비 유예 및 기타 혜택을 검토하고 있었다. 각각의 사정에 따라 검토하던 P씨에게 한 장의 서류가 눈에 띠었다.

이 세입자는 코로나 19 이후 수입이 급감했다며 수개월간 렌트비 유예와 기타 비용 인하를 요청하고 있었다.

P씨가 화가 난 이유는 이 세입자가 운영하는 업체가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아주 장사가 잘 되는 예외적인 업체였기 때문이다.

P씨는 “말은 안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소유한 건물 인근에서 세입자들의 사업체가 어떻게 운영되는 지 수시로 지켜봅니다”라며 “정말 장사가 잘 안 되는 분들 많죠. 저도 마음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이 세입자의 식당은 애당초 투고 위주의 업체였고 온라인 마케팅도 잘해서 장사가 계속 잘 되는 곳이에요. 혹시나 착각일까 싶어서 주변 업주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이전보다 장사가 오히려 더 잘된다고 싱글벙글 이라는 거에요. 그 후로 수 차례 저나 가족 그리고 친구가 방문해서 여러 번 지켜봤어요. 그런데 수입이 줄어들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손님은 몰리는데 직원을 줄이고 전 가족이 매달려서 장사를 하니 수입은 늘었겠죠. 그런데 저한테는 사정이 너무 어렵다고 렌트비를 못 내겠다고 하소연 하니 정말 화가 났어요”라고 한숨지었다.

P씨는 “정말 어려운 세입자들에게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조건을 맞춰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입자는 이전에 없던 ‘몇 달러 이하 카드 결제 불가’등 새로운 조건을 걸지 않나,누가 봐도 수입을 감추려는 거에요. 곧 자료를 모아 이 사업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생각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남가주 일대 건물주와 건물 관리업체의 말을 들어보니 코로나19를 악용, 렌트비를 낼 수 있는 사정인데도 렌트비 유예 또는 다양한 혜택을 요구하는 ‘악덕’ 임차인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문제는 세무당국이 아닌 이상 세입자의 트릭(?)을 밝혀내, 손해배상을 요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보상을 받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코로나 19 확산 이후 “그나마 여유가 있는 건물주가 희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정확한 수입 증감 검토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된 것도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다수의 건물주를 대변하는 한 변호인은 “정직한 임차인들이 훨씬 많지만 건물주를 속이는 일부가 있다”라며 “특히 현금 거래가 많은 업체일 수록 수입증감을 증명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데 교묘하게 수입장부를 조정하는 악덕 임차인이 있다면 당장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한 임차인은 “비즈니스의 성격상 수입증감을 조작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며 “그런데 현금 수입이 많은 주변 업주 중 일부가 상황을 악용하는 것을 봤다. 웬만하면 세입자 편을 들겠지만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아 몰래 주변사람을 통해 건물주에게 귀띔했다”고 전했다.

한편 일부 얌체 업주를 제외한 다수의 사업주들은 생존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다.

사업체 홍보 및 평가 사이트인 옐프닷컴(Yelp)에 따르면 코로나 19사태 이후 폐점한 비즈니스 수는 무려 9만 8000여개에 달하며 현재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도 임대료 조정 및 유예 등이 없다면 폐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체별로는 스몰비즈니스의 약 25%가 렌트비를 연체하고 있다. 대면영업이 필수적인 피트니스센터와 뷰티살롱의 경우 연체비가 40%로 더욱 높다. 운영이 재개됐다고 해도 정원의 30%(체육관 등)만 입장이 가능하니 수입 급감이 불가피하다.

실제 미중소기업청(SBA)등의 최근 집계 결과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통해 스몰비즈니스 업주에게 지급된 5250억달러 이상을 지급했으나 임금 및 유틸리티 비용 등으로 모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관리 업체 관계자들은 “사업체 운영비의 상당수가 인건비와 렌트비인 것을 고려하면 건물주와의 임대료 협상이 비즈니스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대다수의 건물주도 모기지를 받아 매월 페이먼트를 납부하는 사람이며 무조건 부자가 아니다. 모기지 외에도 재산세, 관리비,보험료 등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들이 많다. 은행이나 정부가 건물주나 임대인 모두를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한승

최한승 기자/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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