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희귀의약품 시장…개발전선 뛰어든 제약사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희귀의약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환자 수가 적어 만성질환 치료제에 비해 사용량이 많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개발하는 기업이 적어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더구나 희귀의약품 지정시에는 세금 감면, 독점권 부여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특히 희귀질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은 제약바이오 기업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 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환자 2만명 미만이면 희귀의약품 지정…국내 희귀질환자 52만명=희귀의약품(Orphan drug)은 환자수(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인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하거나 기존 대체의약품보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개선되어야 지정될 수 있다.

희귀의약품법은 지난 1983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미국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 적자 7년간의 독점권 부여, 세금감면 등의 당근을 통해 기업의 신약 개발을 장려하고자 만들었다. 현재 전 세계 희귀질환자는 약 3억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5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국내에서 희귀의약품에 지정된 의약품은 지난 8월 현재 282종에 불과하다.

▶FDA, LG화학·한미 개발 약물 희귀의약품에 지정=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인구 수 자체가 많아 희귀질환자 수도 절대적으로 많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국 내 환자가 20만명 이하일 경우 희귀질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미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의약품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유리하다.

최근 LG화학은 미국에서 임상 1상 진행 중인 비만 치료 신약 ‘LB54640’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전성 비만 치료제로 희귀의약품에 지정됐다고 밝혔다. ‘LB54640’은 G단백 결합 수용체 일종인 MC4R을 표적으로 한 새로운 기전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다. LG화학 관계자는 “전임상 결과 식욕 및 체중 감소 효과의 우수성 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 및 심혈관계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비만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또한 1일 1회 경구 투여에 적합한 약동학적 특성을 확인해 주사 치료 중심의 비만 시장에서 투여 편의성을 높인 차별화된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2022년 임상 1상을 완료하고 2022년부터 유전성 희귀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과 3상을 동시 진행한 뒤 2026년 판매허가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미국 희귀비만 치료제 시장은 2027년 9억 달러(약 1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단장증후군 치료 바이오신약 ‘LAPS GLP-2 Analog (HM15912)’도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단장증후군은 선천성 또는 생후 외과적 절제술로 인해 전체 소장의 60% 이상이 소실돼 발생하는 흡수 장애로 영양실조를 일으키는 희귀질환이다. HM15912는 지난해 5월 FDA 희귀의약품에 지정(ODD)된데 이어, 올해 5월에는 희귀소아질환 의약품에 지정(RPD)됐다. RPD는 희귀소아질환 신약 후보물질 개발을 장려하고자 제정된 FDA의 특수프로그램이다. RPD로 지정되면 FDA 허가심사를 6개월로 단축해주는 권리를 준다. 한미는 현재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앞서 한미는 NASH(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 혁신 신약인 ‘LAPS Glucagon Analog(HM15136)’가 FDA로부터 RPD를 받은 바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자체개발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파이프라인으로 현재까지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사례가 13건”이라며 “이 분야에서 혁신성을 지속적으로 입증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 기업 메드팩토도 최근 전이성 위선암 치료 목적인 ‘백토서팁’과 ‘파클리탁셀’ 병용요법에 대해 FDA에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백토서팁은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형질전환증식인자의 신호전달을 억제하는 신약 후보물질이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종양미세환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암 줄기세포 생성 및 종양의 혈관 생성을 억제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 메드팩토는 현재 백토서팁과 파클리탁셀 병용투여에 대한 임상 2a상을 진행 중이다.

▶세금 감면·독점권 부여…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이처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희귀의약품 개발에 나서는 이유는 개발에 따른 인센티브가 적지 않아서다. FDA는 희귀의약품에 지정된 약물에 대해 임상시험 보조금 지원 및 세금감면, 판매허가 심사비용 면제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특히 품목허가 승인 시에는 7년간 시장 판매 독점권을 부여한다.

시장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희귀의약품 글로벌 시장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1449억 달러(약 176조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시장이 연평균 8~9% 정도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어 2024년이 되면 시장이 약 2500억 달러(29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기업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약사가 희귀의약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시장성보다 공익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기업(제약사)이 사회적 책임에도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는 측면”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더구나 최근에는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희귀질환자 수가 많이 늘면서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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