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송 최종 판결]‘LG-SK 세기의 소송’ 654일 공방전 …로펌비용만 수억달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 일지. 김현일 기자.

[헤럴드경제 김현일 기자]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놓고 벌인 소송이 10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ITC는 이날 LG의 최종 승리를 결정하고, SK에는 10년간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2019년 4월 LG가 소송을 제기한 지 654일 만이다.

양사는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상대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감정 싸움으로까지 치달았다.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일단락됐지만 특허침해 소송 등이 남아있어 배터리 기술을 둘러싼 양사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LG 인력 유출이 발단…ITC 제소로 ‘세기의 소송’ 시작

소송은 LG가 작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델라웨어는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이 위치한 곳이다.

2017년부터 LG 직원들이 SK로 이직한 것이 발단이 됐다. LG는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고 주장하며 기술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다. 같은 해 10월 LG는 SK에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해 채용절차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12월에는 SK로 이직한 직원 5명을 대상으로 대전지방법원에 전직금지 및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LG는 2019년 4월 다시 SK에 ‘전지 핵심 인력 채용 관련 협조 요청의 건’ 공문을 보냈다.

SK의 불법 채용을 주장한 LG는 결국 같은 달 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를 제소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양사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세기의 배터리 전쟁을 시작했다.

SK 역시 같은 해 9월 LG를 상대로 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특허’가 처음 등장한다. 미국 소송전이 영업비밀 침해에서 특허로 확전한 발단이다. 이에 LG도 같은 달 SK를 특허 침해로 맞고소했다.

조기패소→재검토→세 차례 연기…“극적 반전은 없었다”

그러다 양사의 법적 공방은 지난해 2월 변곡점을 맞았다. 미 ITC 행정판사는 LG의 요청을 받아들여 SK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SK는 한 달 만에 ITC에 예비판결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며 맞불을 놨다. ITC가 “전면 재검토한다(Review in its entirety)”고 밝히며 소송은 새 국면을 맞는 듯 했다.

SK는 당시 “ITC의 전면 재검토는 이례적”이라며 “LG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영업비밀인지, 기술침해가 어느 정도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손실을 입혔는지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ITC는 지난해 10월 5일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세 차례나 날짜를 연기했다. ITC 측은 연기 사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내놓진 않았으나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행정 절차가 순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소송제기 22개월 만인 이날 ITC의 최종 결정이 나왔으나 SK가 기대한 반전은 없었다. ITC는 예비 결정을 그대로 인용해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했다.

LG그룹 여의도 트윈타워(위)와 SK그룹 서린빌딩. [LG, SK 제공]
소송 장기화에 로펌 비용만 수천억원

업계에 따르면 양사가 이번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소송비용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이 장기화한 데다 장외공방도 치열하게 펼친 만큼 비용 지출도 상당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양사는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는 여론에 밀려 합의 가능성도 몇 차례 시사했지만 최종 결정일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소송 시작 5개월 만인 2019년 9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등 각사 최고경영자가 회동을 가져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지난 달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강한 어조로 양사 합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낯 부끄럽지 않은가.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려야겠는가. 빨리 해결하시라”고 했다.

SK의 미국 배터리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 폴크스바겐 공장이 있는 테네시주 소속 하원의원 3명도 지난해 말 LG화학 신학철 부회장과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에게 합의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SK으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폴크스바겐과 포드는 ITC에 입장문을 내고, SK 배터리 부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처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국내외 목소리에도 양사는 합의금 액수를 두고 입장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가 2조8000억원 상당의 배상금을 요구한 반면, SK는 수천억원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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