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Soul’을 봤다. 애니메이션 영화나 만화책을 볼 때에도 어떤 영감 같은 걸 받곤 한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을 위한 동화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리라. 부드럽게 속삭이듯 말해주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속의 교훈을 인사이트 뛰어나게 잡아채는 일. 의외로 재미있다.
한때 내 최애 애니메이션 영화였던 ‘라이온 킹’은 몇 번 봤는지도 모른다. 수십 번을 보았는데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한 지점이 늘 똑같다. 어린 심바를 구하고 힘겹게 절벽을 기어 오른 무파사가 동생인 스카에 의해 절벽으로 떨어져 협곡을 휘몰아치며 달리던 누떼의 발길들에 걷어차이며 죽는 장면이다. 죽은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는 어린 심바의 모습이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이 장면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심바는 삼촌인 스카의 계략에 빠져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으로 자존감이 완전히 떨어진 채 그저 그런 사자로 성장한다. 그러다 아버지 무파사의 영혼과 대화를 한 후, 왕의 후예였던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결심을 하게 된다.
아마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영혼이라도 아버지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싶다고 무의식적으로 열망했던 것 같다. 이처럼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Soul’에서도 곰곰 되씹고 있는 부분이 있다.
‘Soul’에는 세 가지 형태의 세계가 등장한다. ’The Great Before’와 인간의 현세인 지구, ‘머나먼 저 세상(The Great Beyond)’이 그것이다. ‘The Great Before’ 란 지구란 행성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 우주계를 말한다. 이곳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자아의 씨앗들은 교육을 받고 있다. 저마다 나만의 개성을 장착하여 꿈과 열정을 찾아야만 가슴속의 불꽃이 일어나 지구에서 탄생할 수 있는 우주 통행증을 교부받는다.
인간의 현세인 지구와 사후 세계인 ’머나먼 저 세상(The Great Beyond)’은 흔한 설정이니 별 의문을 느끼지 못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 상태 우주계인 ’The Great Before’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나에게 상황을 대입해보며 ‘나의 꿈과 열정은 도대체 무엇으로 세팅돼 지구로 보내지고 태어났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너무 과몰입한 것 아니냐고 해도 뭐 할 말은 없다. 이는 인간은 세상에서 무엇인가에 쓰임새가 될 재주와 그 재주를 발전시켜 나갈 열정과 꿈이 있다는 성경적 가치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되돌아봐도 어린 시절 내게는 뭐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없었던 듯하다. 나만의 문제일까? 우리 세대 많은 친구들은 꿈이나 어떤 열정에 빠져 그걸 이루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던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후, 열정 만빵인 운동권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꿈을 갖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치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꿈을 꾸지 못하고 열정을 뿜어내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SNS나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요즘 세대들의 그 과도한(?) 열정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혹시 꿈이 아니라 관심받기 위한 한 수단으로 저런 것들을 행동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특히 TV 프로그램에서 열정들이 뿜어져 나오는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을 보고 있자면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며 이를 단순하게 세대차라고 정의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해보게 된다. 그러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어떤 물건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본성과 열정은 동전의 양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뭔지도 모를 만큼 뜯지도 않은 포장박스, 상품 설명서도 떼지 않은 방안 가득 물건 속에서도 여전히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을 해대며 쌓인 물건을 정리 못하겠다고 아우성치며 SOS를 요청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데 이게 몇몇 연예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쌓여있는데도 계속 물건을 사들이는 인간의 욕심을 ‘열정’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해봐야 한다.
‘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설파하는 현대 자본주의가 끝없는 소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한열정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무한열정의 대가로 얻게 되는 재화로 획득하는 물건들. 그 물건들을 산같이 쌓아 놓았음에도 만족을 모르고 더욱 물건을 구매해나가는 과정이 소비로 점철된 현대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열정을 치켜세우고 박수를 보내는 저의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순수한 열정은 인정받고 격려받아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열정과 욕심을 이야기하다 너무 먼 안드로메다까지 와버렸지만 절제된 소비는 지구의 환경오염과 기후 온난화를 늦추는 아주 원초적인 해결책으로 모든 소비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Soul’ 은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중학교 음악 수업에서 재즈를 가르치고 있는 뉴욕의 뮤지션 조 가드너의 꿈과 불꽃같은 열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제 강사로 재즈 음악을 가르치면서 간간히 이런저런 재즈 무대에서 연주를 하던 조 가드너는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인 도로시 윌리엄스가 이끄는 재즈 밴드에 피아니스트를 급하게 구한다는 제자의 소개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중학교 음악교사(그것도 임시 강사)라고 인사를 하자 리더인 색소폰 연주자는 잔뜩 불신을 나타내며 마지못해 연주를 시작한다. 전설의 연주자 앞에서 당황하던 조 가드너는 찬찬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리듬에 맞춰 즉석에서 잼을 훌륭하게 해낸다. 리더의 색소폰 연주가 절정을 향하고 피아노 연주도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마침내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마지막으로 조 가드너는 밴드의 일원으로 저녁 공연에 함께 설 것을 제안받는다.
어린 시절 재즈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무대를 본 후, 재즈 피아니스를 꿈꿨던 조 가드너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려는 찰나. 흥분한 상태로 맨해튼 인도를 뛰어가던 조는 길 한가운데 맨홀에 빠져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게 된다.
‘머나먼 저 세상(The Great Beyond)’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던 조 가드너는 꿈에도 그리던 재즈 피아니스 데뷔를 몇 시간 앞두고 영혼 탈출이 된 자신의 상황을 알아채고는 지구 병실에 누워 있는 자신의 신체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저 세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도망친 조는 ‘The Great Before’로 떨어지는데 이곳에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몇 번을 낙하하지만 결국 통행증이 없어 실패하고 만다. 이곳에 머물며 통행증을 손에 쥘 기회를 엿보던 조는 자아의 씨앗에게 멘토를 하는 선생님으로 위장하여 22번 자아의 씨앗에게 열정을 심어 그의 지구 통행증을 손에 쥐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시니컬한 22번 자아로 인해 속이 타고… 좌충우돌하다 결국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허무와 좌절과 으스스함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떨어진다. 이곳에는 지구와 이곳을 이어주는 문윈드가 항해 중이다. 조는 문윈드의 도움을 받아 지구 병실에 누워 있는 자신의 신체로 돌아가게 되는데 서두르던 나머지 조의 신체에 22번 자아가, 조는 병실을 돌며 환자들에게 위안을 주던 고양이의 몸으로 떨어지게 된다.
예기치 않게 사람의 일상을 경험하게 된 22번 자아는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 하늘에서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피자 한 조각에 행복을 느끼는 등 너무나 평범해서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는 일상을 경험하며 인간의 삶을 살고 싶다는 설렘을 갖게 된다. 그동안 자기의 관심이나 열정이 무엇일까? 전혀 관심 없이 모든 것에 시니컬했던 22번에게는 획기적인 경험이었다.
결국 조 가드너의 열정에 탄복한 The Great Before의 관리자들인 제리까지 함께 나서 조의 지구 귀환을 도와주고 조는 성공적으로 재즈 클럽 무대에서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무대가 끝난 후, 그토록 염원했던 자신의 꿈을 이뤘지만 오늘도 그저 어제와 똑같고 내일 역시 똑같이 연주를 할 뿐이라는 색소폰 연주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허해진다.
이때 도로시는 조에게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어린 물고기가 물에서 열심히 헤엄을 치면서 어른 물고기에게 물어봤지. 아저씨… 바다를 찾고 있어요? 어른 물고기는 네가 있는 이곳, 여기가 바로 바다야! 녜? 여긴 그냥 물인데요? 난 바다를 찾고 있다고요?’
모두 열정적인 삶을 살면 좋겠지만 내가 삶을 불태울 그 무엇을 찾지 못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그저 내게 주어진 일상의 삶에 최선을 다해 생활하다 보면 내 인생도 작지만 가치 있는 삶 아닐까?
애니메이션 영화 Soul이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과도한 열정, 극성스러운 목표와 도전의식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내 삶을 평가 절하하지 말라고.
이명애/서울 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