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표 총기규제 한 고비 넘었다…미 하원, 총기거래 신원조사 의무화 법안 통과

미국 시카고 경찰이 14일(현지시간) 지역 공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현장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총기 소지가 자유화된 미국에서는 매년 총기 사고가 빈발해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AP]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국에서 총기 거래자의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해 상원 통과만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법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고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으로 제정된다.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이번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개인이나 미등록 총기 판매자에게도 총기 거래에 있어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방 수사관이 수행하는 신원 조사 기간을 사흘에서 열흘로 늘리는 법안도 하원을 통과했다.

총기 거래 규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에서 총기 자유화를 옹호하는 단체의 목소리가 너무 커 추진 자체가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았다.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이 법안들이 상원을 통과하려면 상원의원 100명 중 6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양분하고 있어 통과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2013년과 2019년에도 유사한 총기 규제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당시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에서 번번이 부결됐다. 이번 하원 표결에서도 각각의 법안에 대해 공화당 의원 8명과 2명만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에선 2012년 26명의 사망자를 낸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총기 구매 신원조사 강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했지만 지지자 대부분이 총기 소지를 찬성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13년 총기 규제 법안에 찬성한 바 있는 팻 투미 공화당 상원의원 측은 지난주 "2013년 총기 규제 법안은 여전히 지지하지만, 최근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찬성표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총기 규제 강화를 핵심 어젠다로 설정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됐고,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적극적인 데다 미국총기협회(NRA) 세력이 약화한 상황이어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입법화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Everytown For Gun Safety) 등 총기 규제 지지 단체들은 지난 11일 온라인 시위를 벌였다.

리처드 블루멘털 민주당 상원의원은 "변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신원 조사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라며 "공화당 동료 의원들이 이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이미 공화당 의원들을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은 당연히 의회 지도부는 물론 의원들과 총기 안전 법안 통과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그것이 우선순위에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국총기협회는 지난 1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150년 만에 본거지를 뉴욕에서 텍사스로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2018년 17명의 사망자를 낳은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기사건 3주기를 맞이해 의회에 더욱 강력한 총기 규제 도입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성명에서 "3년 전 오늘, 파크랜드에서 총격범 한 명이 학생 14명과 교사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라면서 "파크랜드 지역 사회와 함께 총기 폭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해 애도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총기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종식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 행동하겠다"라면서 "의회에 상식적인 총기법 개혁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총기 판매 시 이력 조회 의무화, 공격용 총기와 고용량 탄창 금지, 총기 제조자 책임 강화 등을 요구했다.

2018년 2월 14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 이 학교 학생 출신인 19세 남성이 난입해 반자동 소총을 쏴 17명이 숨졌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 대한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이 학교 학생과 유족을 중심으로 강력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총기 소지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2조 옹호자들과 공화당의 반발로 포괄적인 총기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앞서 2007년 32명의 사망자를 낳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참사, 2016년 플로리다의 성 소수자 나이트클럽 '펄스' 총격사건 등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낳은 총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총기 규제 법안으로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soohan@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