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금소법 한 달… ‘적정성 원칙’ 실종 사건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Q. 소비자가 특정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며 은행을 찾았는데, 투자 성향 분석 결과 부적합한 것으로 나온다면 펀드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A.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 네.

A. 시중은행 : 아니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 한 달이 지났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소비자가 원하지만, 투자 성향 상 부적합한 펀드를 가입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원칙적으로는 가입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소법 상 ‘적합성 원칙’과 ‘적정성 원칙’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적합성 원칙이란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할 경우 투자 성향에 적합한 상품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적정성 원칙은 금융사의 권유 없이 소비자가 금융상품 계약 체결을 원하는 경우 투자 성향에 적합한 지를 파악해 위험성 등을 알려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금융사가 상품을 권유했다면 적합성 원칙이, 안했다면 적정성 원칙이 적용된다. 적합성에 위배된다면 금융사는 상품을 판매해서는 안되지만, 적정성은 위배되더라도 금융사의 의무는 상품내용을 알려주는 것에 그칠 뿐 판매는 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자기 책임 하에 투자하는 것은 허용하는 것이 자본주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소비자가 원해도 투자 성향이 부적합한 것으로 파악되면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적정성 원칙을 지키려면 소비자가 금융사 권유 없이 특정 상품을 원해서 가입했다는 것을 은행이 입증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소비자가 은행 창구에 앉는 순간부터 녹취가 진행돼야 하는데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5대 은행은 모두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적정성 원칙이 사문화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소비자가 특정 상품을 원한다’는 것의 정의는 해당 상품 명칭을 정확히 알고 가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했다”며 “현실에 그런 소비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특정 상품을 원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 않는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성황리에 완판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의 경우 A사에서 판매하는 실제 명칭은 ‘○○국민참여정책형뉴딜 혼합자산투자신탁’이기 때문에 단순히 “뉴딜펀드 가입하고 싶다"”는 수준의 의사표명만으로는 특정 상품을 원했다고 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사가 그 자리에서 팔지 않더라도 가입할 수 있는 길은 있다. 추후 투자성향 분석을 다시 진행해 위험선호가 높은 것으로 나오도록 답하는 우회로다.

사실 적정성 원칙의 혼란은 금소법이 일으킨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금소법이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현실과 맞지 않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정·해석된 결과다. 금융사는 금융사대로 영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금소법 가장 첫머리 규정된 이 법의 목적은 단순히 ‘소비자 보호’가 ‘소비자 권익 증진’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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