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 회장이 3월 KPGA 시니어 마스터즈에 출전했을 때의 모습. [KPGA 제공] |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구자철 회장은 골프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유명한 골프 애호가다. 스스로 “제 주변 누구도 저더러 왜 남자프로골프(KPGA) 회장 맡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골프를 엄청 좋아하는 걸 다 알거든요. 적격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습니다”며 웃었다.
공인핸디캡 7인 구 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69타. 홀인원은 4차례 했는데 곤지암, 한양, 제일, 렉스필드CC에서 차례로 경험했다. 드라이버샷 얘기가 나오자 “왕년엔 좀 (멀리) 때렸지만 지금은 뭐…”라면서도 “얼마전 최상호 프로가 투어 대회에 출전해 250야드 날린다고 하셨던데, 제가 220야드면 너무나 다행 아닙니까”라며 껄껄 웃었다.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1984년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뉴욕 주재원으로 일할 때였다. 같은 회사에 있던 사촌 구자열(68) LS그룹 회장의 권유로 시작했다.
“당시 구 회장님이 제 사수였는데 7번 아이언을 주시며 여긴 골프 배우기 좋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부터 공 맞히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스개소리로 구씨들은 성이 구씨라 그런가 공 갖고 하는 거 다 좋아한다고 하는데, 친척들이 대부분 아마추어 상위권이에요. 돌아가신 구본무 회장도 정말 잘 치셨죠.”
지난 3월에는 혹독한 프로의 세계를 체험하기도 했다. 무대는 KPGA 시니어 마스터즈. 시니어 투어 활성화를 위해 구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대회인데, 작년 10월 박승룡 선수가 경기 도중 심근경색으로 숨져 대회가 연기됐다. 추모의 의미에서 구 회장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해 출전한 것이다.
구 회장은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이 올 데가 아니더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구 회장의 스코어는 24오버파 96타. 자타공인 퍼팅의 달인인 그도 거센 바람 때문에 그린 위에서 공이 절반도 안구르면서 스리(3)퍼트, 포(4)퍼트를 연발했다. 파4홀에선 해저드에 두번 빠뜨리고 그린 뒤 OB 구역으로 넘기고 해서 10타 만에 간신히 홀아웃했다.
“그날 태안 솔라고CC에 바람이 무척 많이 불고 추웠어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죠. 게다가 시니어 선수라도 거리가 많이 나니까 웬만하면 앞 조 홀아웃할 때까지 기다려요. 그게 쌓이니 6시간 넘게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자기 루틴 다 지키고 집중하며 실수하지 않는 프로들의 모습을 보고 ‘아, 이 분들은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죠. 존경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구 회장은 “100% 자신하건대, 이번에 박찬호 선수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같이 치는 동반자들에 민폐 끼칠까봐 걱정하고 그러다 보니 샷이 더 안됐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가끔 웃으며 얘기해요. ‘우리가 30~40년전에 왜 블랙티에서 쳤지?’ 하고. 그땐 (드라이버샷이 훌쩍 넘어갈까봐) 무서워서 못치던 홀이었는데 지금은 절반도 안가잖아요. 그런데 아들 녀석은 우리 젊을 때처럼 뒤에서 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하죠. 누구나 그 단계를 거치는구나, 그게 골프구나 생각해요. 도전정신, 창의성, 자신감, 정직, 신뢰, 기본기의 중요성. 인생과 많이 닮았죠. 한순간 방심하면 무너지고, 마음 비우면 또 잘되고. 집에 갈때쯤 되면 잘 맞고, 그래서 또 오게 만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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