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떠날 때에 대비하는 은행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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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bestock>

“이직을 위해 공부 중입니다”

최근 자리를 함께 한인 상장은행 간부의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장 내 신망이 두텁고 식스 피겨(미국에서 10만달러 이상 연봉, 즉 고소득 직군을 뜻하는 말)의 수입이 보장되는데 이직을 생각한다니 ‘월급이란 그저 내 구좌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인 처지로서는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나름 이해가 됐다.

그의 말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 내가 하는 업무를 냉정히 살펴보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사실 큰 지장이 없다. 또 최근 AI의 기능을 보면 사실상 사람 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은행 입장에서 봤을 때 초기 투자 비용이 문제이지 일단 시스템만 갖추면 손익 분기점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라며 “한인은행의 경우 IT 관련 인프라가 대형은행 등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고 영업망도 확장 중이어서 당분간은 대대적인 감원 움직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타이밍이 올 수 있다. 더 나이가 들거나 심리적으로 나태해져 안주하게 되면 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직이라고 해서 뭐 더 큰 수입을 보장하는 곳이나 직종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오랜 기간 지금보다는 적어도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겠다는 말이다. 한동안 일을 쉬던 아내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 시작해 내 수입이 줄었을 때를 대비하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자기 용돈 정도는 벌어 가계에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어느 정도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다른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런 불안감은 입행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중간 매니지먼트(?) 층에서 더욱 심하다.

고위 간부들의 경우 어느 정도 은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고 신규 직원들은 아직 젊은 나이어서 이직이 손쉬운 편이다. 반면 중간급 직원들의 경우 어느 정도 자리가 안정되는 상황이고 결혼과 자녀 출산 등으로 지속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거기에 업무량도 가장 많아 자기 개발도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의 트렌드는 이들 편이 아니다.

입행 10년차의 한 직원은 “여전히 네트워크가 중요한 대출 부서의 경우 스트레스가 높을 지 모르지만 본인의 역량만 있으면 기타 부서에 비해 이직 및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이라며 “반면 기타 부서의 경우 ‘내가 인공지능이나 경쟁 직원 보다 나을까?’라고 물었을 때 솔직히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특히 각 지점의 일반 직원 등은 어느 순간 자리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요즘 상황”이라고 한숨지었다.

한편 미국 대형 은행들은 향후 10년간 임직원의 약 10%를 줄일 계획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웰스파고 은행의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미 대형은행은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AI) 집중해 올해부터 10년 동안 현 인력의 약 10%에 달하는 20만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 은행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 감축이다.

웰스파고 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뱅킹 서비스가 크게 강화됐고 핀테크 및 기타 금융기관이 은행업에 뛰어 들면서 AI를 강화하고 인력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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