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웃지 않는다”…어둡고 무거워진 도시 카불

미군이 떠나고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은 지 하루 만에 수도 카불은 억압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카불 시민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 집권 첫날부터 도시의 풍경이 삭막해지고 남겨진 시민은 절망에 빠졌다고 31일(현지시간) 전했다.

아프간 여성 아리파 아마디(가명)은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청바지를 불에 태웠다. 그는 “아침에 남동생이 내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사러 나갔다”고 울먹였다. 아마디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최근 취직까지 한 청년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들어서자마자 실직했다.

그는 아프간 파라주의 한 세관에 취직해 기뻐하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 후 3주 만에 직업을 잃었다.

탈레반이 “모든 여성은 사무실에서 떠나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아마디는 “아무 것도 날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절망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네사르 카리미(가명)는 탈레반 집권 첫날 오전 6시에 은행으로 바로 향했다.

그러나 카리미처럼 돈을 인출하려는 시민으로 은행 앞이 북적였다. “6시간을 대기했지만 은행은 ‘돈이 다 나갔다’며 현금인출기(ATM)를 폐쇄했다”며 “탈레반이 회초리로 시민을 때리고 있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돈을 인출하지 못했다.

“평생 여기서 살았지만 카불이 이런 모습이었던 적이 없다”던 카리미는 “모두가 표정이 없고, 다들 체념한 듯이 행동한다. 아프간 국민은 망가졌다”고 덧붙였다.

카불은 아프간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로 꼽히는 곳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카불 시민은 여느 나라 시민 못지않게 운동과 미용, 문화생활을 즐기고 향유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진입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은 시내를 걸어 다니는 사람의 옷차림부터 단속하기 시작했다.

레샤드 샤리피(가명)는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인근 산으로 향했다. 도중에 마주한 건 탈레반의 총이었다.

샤리피는 “탈레반이 다가오더니 총을 나에게 겨눴다”며 “나에게 ‘다시 돌아가 이슬람 신자처럼 갈아입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의 희망을 다 잃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탈레반은 미국이 철군하자마자 폭죽을 터뜨리며 자축했다.

에크마툴라 와시크 탈레반 고위관계자는 “아프간 시민은 차분해지고 인내해야 한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시민 모두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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