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은행 잦은 이직…직장문화 혁신 필요하다

Fired man
<이미지:adobestock>

남가주 소재 한인은행 SBA 부서의 책임자인 J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서니 텅 빈 책상부터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일부 직원들이 다른 은행으로 떠나며 남은 자리다.일부 재택 근무자들까지 출근을 하지 않으니 빈 공간은 더욱 커 보인다.

한숨을 내쉬는 J씨의 옆에 커머셜 론과 모기지 부서 관계자까지 모여 든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머리 속 생각은 뻔하다. “어떻게 자리를 채우지…”

최근 한인은행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J 씨는 “SBA 융자와 대출은 서로 인력 빼가기가 하도 잦다 보니 빈 자리를 채우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데 요즘은 느낌이 좋지 않다”며 “이전에는 조금 규모가 작은 은행에서 경력자를 빼오는 방식과 기타 부서의 인력을 선발해 이동시키는 방법이 잘 먹혔는데 이제 우리가 그대로 당하고 있다. 주류 은행과 한인은행의 주 경쟁 상대인 중국계 은행이 인력을 데려가기 때문이다. 꼭 잡고 싶은 직원에게는 연봉과 인센티브를 올려 카운터 오퍼도 해보지만 대형 은행과 경쟁이 안 된다”라며 한숨지었다.

그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아예 경력직을 구하기 보다는 평소의 인맥을 통해 은행권 이직에 관심이 있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어느 정도 금융 상식이 있는 분야(보험, 모기지 등)의 한인기업들에 비해 한인은행들의 대우나 베네핏이 좋은 편이어서 이직을 결정하는 인원이 꽤 된다고 한다.

“물론 그 분야 관계자들은 은행권에서 사람을 빼가는 일에 불만이 많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상도의를 지키며 공격적인 스카우트를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지만 이제는 은행 입장이 급하고 내 코가 석자다 보니 오는 사람 막지 않게 됐다. 다음주부터 새롭게 뽑은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데 이들 인력을 잘 성장시키는 것은 온전히 나와 은행의 몫이다”라고 J씨는 말했다.

다른 한인상장은행의 HR 부서 관계자는 “지난 1년간 한인 은행원들이 ‘급여보호 프로그램’(PPP)과 경제피해재난대출(EIDL) 등 SBA 관련 업무 처리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기존의 중국계 은행은 물론 주류 은행에서도 한인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인 은행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출은 물론 규정및 규제문제와 IT 부서의 지속적인 충원도 필요한데 여기는 애당초 인재 풀이 더욱 좁다. 한국어와 영어를 고르게 잘하면서도 한국식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런 직원은 부르는 게 값이라 주류 은행과 연봉 경쟁이 붙으면 백기를 들게 된다. 실례로 같은 직급과 업무를 볼 때 한인은행들의 연봉선이 다섯 자리라면 중국계와 주류 은행은 이른바 여섯자리숫자(10만달러 이상대의 고연봉)가 넘어가니 말릴 도리가 없다는 게 한인은행 인력담당자들의 고충이다.

그나마 각 지점의 텔러와 기타 사무직의 경우 SBA,커머셜,기타 대출 부서 등에 비해 인력난이 덜 하다고 알려지는데 이 역시 예전과 비교하면 구인이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이직 비율도 높아졌다고 한다.

한 은행 인사 담당자는 한인은행에 입행하는 직원들의 사고 방식 변화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한인사회만 놓고 보면 한인은행처럼 연봉과 대우가 좋은 직장이 드물다”며 “그런데 이제 1세대나 1.5세가 아닌 2세대가 부상하면서 언어와 문화 등에서 반드시 한인 직장에 머물 필요가 없어졌다. 또 젊은 직원들은 한인은행을 이른바 디딤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어느 정도 경력과 실무 능력을 쌓아 큰 은행으로 가겠다는 마인드다. 애당초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직 붐은 조건을 맞춰주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화적인 부분도 경영진들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한인들을 대표하는 근면(勤勉 부지런히 일하며 힘씀),이른바 워크에딕(Work ethic)은 모든 면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근면에 대한 개념은 예전과 달라졌다.한인사회의 근면이라는 개념은 빨리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것, 추가 적인 업무를 피하지 않고 필요하면 다른 직원의 업무도 돕는 것, 은행을 평생 직장으로 알고 충성하는 것이 포함된다.

하지만 요즘 직원들이 생각하는 근면은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이행해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추가 업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요 그것도 ‘돈’과 ‘승진’이 보장 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승진되고 임금도 늘겠지가 아니라 노력과 승진(임금 상승)은 반드시 교환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돈과 승진보다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원하는 신세대도 많다. 여유 있는 집에서 커 받을 유산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워라벨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욱 크다.한국식 근면이 강요되는 직장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젊은 직원들의 발을 메어두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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