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횡령, ‘한탕범죄’ 왜?…“감옥 다녀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

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강동구청 공무원 김모 씨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광진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2215억원을 빼돌린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 115억원 공금을 횡령한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 245억원의 회삿돈을 가로챈 계양전기 재무팀 직원 김모 씨까지…. 최근 잇따라 발생한 횡령 사건들은 규모가 상당할 뿐더러 피해 금액이 주식투자 등 자산 증식에 활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일종의 한탕주의 범죄가 기승을 부르는 배경에는 약한 처벌과 함께 경제적 가치가 과도하게 우선되는 현실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횡령 관련 범죄 건수도 증가했다. 18일 경찰청의 ‘주요 경제범죄 발생 및 검거현황’에 따르면 횡령죄 발생 건수는 2011년 2만6767건이었다가, 최근 10년간 꾸준히 증가해 2020년에는 2.2배인 5만8889건으로 늘었다. 같은 해 횡령죄 검거 건수는 2만7883건으로, 검거율은 47%였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준법감시제도와 고소·고발이 활발해지면서 적발된 범죄 건수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봤다. 검거 건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 김 실장은 “더욱 복잡해진 금융구조, 혐의 입증이 어렵도록 범죄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 두는 점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이 회사 직원 이모 씨가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

전문가들은 횡령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낮은 처벌과 더불어 노동 수입이 경시되고 소위 ‘한탕’으로 획득하는 금전의 가치를 이익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지적했다. 김 실장은 “몇 년 감옥을 살고 나오는 일보다 일확천금을 버는 게 낫다는 얘기들을 한다. 이는 횡령 범죄로 얻는 경제적 이득이 법적 책임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계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탕’을 노린 불법 행위에 대한 수치심이 사라진 측면도 봐야 한다”며 “이런 행동의 기저엔 윤리와 도덕을 지키면서 월급으로는 중산층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팀 등 소속된 기관의 공금을 다루는 직급에서 일어난 횡령 범죄를 개인 일탈로 보기엔 그 액수와 빈도가 심상치 않은 점도 지적된다. 박 교수는 횡령을 단순한 개인 일탈로 여기면 유사 범죄는 지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지금까지도 자금 업무 담당자 개인의 윤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윤리 교육 강화나 빈번한 외부 감사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제도 차원의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액인 횡령 사건의 심각성이 개개인들에게 와닿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박 교수는 “횡령 범죄는 강력 범죄처럼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게 아니고 피해자가 명백히 눈에 보이지 않아 민감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액수가 너무 커 피해자 개개인의 삶을 얼마나 파괴하고 위협하는지에 대한 체감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금을 빼돌린 횡령 사건의 여파는 개인 주주들이나 시민들에게 돌아갈 공공서비스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박 교수는 “사회는 정직, 가족 등 다양한 가치가 균형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데 유달리 돈만 강조되는 ‘제도적 아노미’가 심각해졌다”며 “수입이 적더라도 과정을 존중받았던, 삶의 원동력이 사라진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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