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book적]中 제국서 한반도 정체성 지켜낸 건 ‘의로움’

“한반도가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복합 특수성이라 불러볼 수 있다.(…)이는 한반도인이 어떻게 그들 자신이 다른 이들과 구분되며, 또 특히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한반도가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56개 소수민족을 중국에 편입시키는 정책으로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마저 중국것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을 정복한 칭기즈칸도 ‘중화민족’이며, 한복·김치 등 조선족의 문화도 중국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역사상 한반도는 대륙의 주변국들이 중국 제국에 편입된 것과 달리 수백 년 동안 단 한번도 중국의 일부가 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고유하다.

냉전 전문가로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제국과 의로운 민족’(너머북스)에서 고려-조선, 원-명 교체기로부터 현재까지 한중 관계 600년을 통해 그 이유를 천착한다.

그의 질문은 두 가지다. 한국은 왜 항상 독자적 국가로 유지됐을까? 한국이 제국 바깥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이를 정체성과 지식에서 찾는다.

먼저 민족 개념이 형성된 근대 이전에도 한반도에 민족이 존재했느냐다. 민족의 정의는 공통의 혈통·역사·문화·언어 등으로 통합된 사람들이 특정 국가나 영토에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한반도에서의 20세기 민족주의와 그 이전의 민족주의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인의 민족주의 인식은 역사적 변화나 외부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개념은 아니지만 다른 민족과 스스로를 구분하는 고유성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런 민족주의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생겨났다고 본다.

저자의 통찰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은 책 제목에서 밝힌 ‘의로움’이란 개념이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 의로움이 궁극적으로 좋은 가치로 여겨지고, 종종 억압적인 정권에 대항하는 가치로 소환되는데 주목, 그 연원을 조선 600년의 기둥이었던 성리학에서 찾는다.

즉 사람들이 올바른 원칙을 깨닫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황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희의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이 건국됐으며, 이를 위로부터 아래까지 온전히 체화했다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의로움이 사물의 타당함이자, 가족과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의 올바른 질서를 의미한다고 봤다.

조선은 우주를 지배하는 도덕적 원칙에 따라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고, 조화, 위계, 가족, 수양, 학습이 강조됐으며, 의(義)를 핵심 구호로 선포했다. 유교적 덕치와 의로움에 따라 백성을 다스릴 때만 통치자는 정당성을 갖는다. 이를 통해 조선은 윤리적으로는 엄격하고, 유연함이 덜한 사회가 됐지만동시에 응집력 있고 강하고 장기 지속할 수 있는 사회를 창출했다는 평가다.

이런 정체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명 제국이 무너지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제국의 꿈이 사라진 와중에도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베스타 교수는 이 유교적 원리가 한반도인과 중국인을 연결했고, 같은 원칙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거나 다르게 적용할 때 두 나라를 갈라놓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유교적 이념에 바탕한 조선의 ‘사대(事大)’에 대해서도 색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큰 나라를 섬긴다’는 의미에서 명과의 관계를 조선 국왕은 사대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조선이 명 조정의 호의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 지도자들이 한반도에서 하는 일을 사대의 논리를 통해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즉 사대는 명과 다른 외적의 한반도를 향한 간섭을 막고 조선의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반도가 중국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된 국가를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 지식을 든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국이 스스로 아는 것보다 제국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였다. 조선은 조공이란 형식으로 해마다 몇 차례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를 통해 무역과 정보 및 지식 수집에 나섰다. 명 관리는 대규모 조선 사절단을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과 함께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정보와 첩보 수집으로, 조선의 위정자들은 중국에서 새로운 제안이 올 때마다 대응방안을 세울 수 있었고, 중국은 조선을 조력자로 여겼다. 티베트, 신장, 몽골, 대만처럼 제국의 일부가 돼 중국처럼 살라는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조선은 청을 제국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한 존재였다는 주장이다.

베스타는 현재 남북한 분단과 북핵문제, 통일까지 중국의 관여 없는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양국이 과거 공유했던 역사와 문화, 지리 관계가 현재 강렬한 민족주의로 변환, 폭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북 및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지, 중국의 부상 속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짚었다. 그 답은 과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17년 하버드대 라이샤워 강연에 기초한 것으로 탁월한 식견과 통찰이 한·중 관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 정세로 까지 시야를 넓혀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제국과 의로운 민족/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옥창준 옮김/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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