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가격 올리기 대신 용량 줄인다

“다른 점을 아시겠나요?”

주변에서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로 통하는 한인 Y씨.

얼마 전 식당을 경영하는 지인에게 초대를 받았다. 평소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조금 꺼림칙했지만 가족 간 관계가 깊어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보니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자신만을 위한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표정 관리를 하는 Y씨에게 식당 업주는 “홍보해달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라며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식당 업주는 눈썰미 좋기로 유명한 Y씨에게 이른바 슈링크 플레이션(shrinkflation, 줄어든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초대한 것이었다.

최근 요식업체와 식품 업계를 중심으로 슈링크 플레이션을 택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슈링크 플레이션이란 원자재와 물가 상승 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커진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뜻한다.

업주의 경우 가격을 유지하고 용량을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 도 있다.

업주들은 소비자들이 가격보다는 내용물의 변화에 더 둔감하다는 점에 주목해 이를 택하고 있다.

이는 가격을 올리면 지갑에 부담이 바로 커져 소비 방식을 바꿀 수 있지만 내용이 조금만 줄어든다면 대다수의 소비자가 불만을 가지더라도 계속 구매한다는 심리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Y씨를 초대한 식당 업주도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식기와 조명 등을 바꾸고 음식 주요 재료의 양을 줄이면서 플레이팅 방식도 바꿔 메뉴를 꾸민 것이다. 업주의 관심은 고객들이 이전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느끼겠느냐였고 Y 씨는 “이 정도라면 큰 불만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을 했다. 업주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 인사와 함께 식사를 대접했다.

LA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한 한식당 중에서도 가격 인상을 포기하는 업체들은 슈링크 플레이션으로 기울고 있다. 실제 LA 한인타운 내 한식당 중 상당수가 김치 등 필수 반찬 외에 곁반찬 가지수를 줄이면서 주 메뉴의 용량을 10~20% 덜어냈다. 평소 주문 빈도가 적은 메뉴를 중단하거나 직원 수를 줄이고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LA 한인타운에서 수 십 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식당의 업주는 “그간의 경험상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이는 것 일단 시작하면 외부적인 압박(인플레이션)이 줄어도 원상회복이 쉽지 않다.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라며 “고객층 중 핵심(단골)과 일반(가끔 찾는 비율) 그리고 새로운 손님의 비율을 잘 생각해 본 후 단골을 지키면서 일반 손님의 재 방문 비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쪽으로 경영 방향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기가 어려울 수록 단골장사로 버티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슈링크 플레이션은 식당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켓에서 흔히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도 용량을 줄였다.

화장지 제조업체 클리넥스는 한 통에 들어있는 티슈의 수를 기존 65장에서 60장으로 줄였고 네슬레와 기타 음료 기업들의 캔 커피도 기존 100미리리터를 90미리리터로 줄였다. 요거트도 가격은 그대로지만 157미리리터 한팩이 133미리리터로 감소했다. 스낵류는 용량을 10%가량 줄이는 대신 그만큼 공기를 더 넣는 눈속임을 택했고 빨래 비누와 세제 등 기타 생필품 들도 적게는10%에서 20%가량 용량을 줄이고 있다.

기존에 구입하던 제품의 포장이 달라졌거나 조금이라도 가볍게 느껴졌다면 이런 슈링크 플레이션이 적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매 전에 표시된 각종 정보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최한승

최한승/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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