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투입 ‘일촉즉발’ 대우조선… 與 “불법 엄단”vs 野 “타협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에 대해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역경제 회생과 파업 피해액수가 수천억 규모로 커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엄단대응’에 힘을 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대응에 들어갔다. 자칫 ‘제2의 용산참사’나 ‘2의 쌍용차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타협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與 ‘엄단’ 기조=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9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며 “48일째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6600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어 “7곳의 협력업체는 폐업을 결정했고 정직원 일부는 휴업에 들어갔다. 지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120명이 10만명의 생계를 잡고 있다”며 “하청업체 임금, 처우에 원청인 대우조선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하청업체 노조가 떼쓰고 우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대다수 국민은 불법, 폭력도 서슴지 않는 민주노총의 강경투쟁 방식에 많은 거부감을 느낀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불법은 종식돼야 하고 합법은 보장돼야 한다”며 “더 이상 불법이 용인돼선 안 된다. 대한민국에 치외법권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우조선(하청노조 파업)과 관련해 공권력 투입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로 보느냐’는 물음에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산업 현장에 있어서, 또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해석에 따라 언제든 공권력 투입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우조선 하청업체 파업사태와 관련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총리로부터 결과를 보고 받았다.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관계 부처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관계장관 회의 후 정부는 기재부, 법무부, 행안부, 고용부, 산업부 등 5개 부처 명의의 공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불법파업 장기화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법과 원칙에 따른 단호한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

▶노동계 ‘고질’ 원·하청= 대우조선 하청업체 파업의 본질엔 원·하청 구조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원청 업체인 대우조선이 하청업체에 일감을 배분하는 구조인데,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권한은 사실상 원청업체 손에 쥐여져 있는 상태다. 문제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파업 협상권은 소속 하청업체에만 국한되는데, 이 때문에 권한과 책임이 이원화돼 사실상 협상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기본 구조다. 원청업체는 ‘우리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하청업체는 ‘권한이 없다’며 뒤로 물러서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매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원청업체 대우조선의 상황 역시 녹록치는 않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7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523%를 넘어선다. 산업은행은 지난 2001년 대우조선의 최대주주가 됐는데 이후 20년 넘게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려 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올해 초 유럽연합(EU)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에 대해 ‘독과점’이라며 불승인 조치를 내렸다.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은 원청업체 노조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같은 조선소 노동자지만 대우조선 소속 노동자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8일에는 파업을 진행중인 하청업체 노동자들(하청지회)을 지지하는 민주노총의 집회와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대우조선 정규직 직원의 집회가 대우조선 사내외에서 동시에 열렸다. 하청지회를 지지하는 민주노총측은 “조선업이 호황이 됐다. 임금 30% 인상이 아니라 원상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대우조선 정규직 직원들은 “조선하청지회 불법점거로 선박 진수도 못하고 대우조선 구성원만 죽어간다”고 파업 철회를 요청했다.

법원도 하청지회의 파업에 대한 ‘집회 및 시위 금지 등 가처분’을 인용하며, 하루에 300만원씩을 대우조선해양에 지급하라고 하청지회측에 명령했다. 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부터 노동자 임금 30% 인상과 노조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법원은 지난 17일 “지회의 행위는 정당한 쟁위(쟁의행위)의 범위를 벗어났다. 위반행위 시 하루 300만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간접강제를 명한다”고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장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함께 참석했다. [연합]

▶일촉즉발에 野 “대화로 풀어야”=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불법 상황을 종식해야 한다고 하자마자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제2의 용산참사, 제2의 쌍용차 사태와 같은 참사가 예견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대우조선 파업 문제가 단순한 원·하청 간 노사 문제가 아니라 대우조선의 누적된 적자,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다단계 하청, 저임금 노동 구조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된 문제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정부가 이렇게 대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궁극적으로 공권력 투입 방식이 아니라 대화로 풀어나가도록 우리 당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사회의 첨예한 이견을 조정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하는 자리 아니냐”며 “안전하게, 가급적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도록 조정할 능력을 보여줘야지 공권력 투입으로 정리하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도 “180㎝의 남성 노동자가 사방 1m의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둘 수밖에 없는 참담한 삶에 대해 국민들도 우려가 크다”며 “불법을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데에만 골몰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민정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16명을 살해한 무도한 살인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말도 안 되는 안보 파탄을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는 무더위에 28일째 철제 감옥에 갇혀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의 인권에는 ‘불법파업 엄단’으로 대응했다”며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참을 만큼 참아왔는지 알고나 있느냐”고 따졌다.

당권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원·하청 구조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이 우리 노동시장과 산업현장에 필요함에도 이 부분은 외면하고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쌍용차 진압하듯 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오른손엔 한동훈, 왼손엔 이상민으로 대한민국을 검경 독재국가로 끌고 가겠다는 발상”이라 지적했다. 박 의원은 “국민들도 윤 대통령의 무능함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정치적 타협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대통령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도 만들어 대응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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