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나 싶더니 ‘고물가·빚 쓰나미’…폐업 내몰리는 자영업자 [거리두기 해제 100일 & 확진 10만 돌파]

계속되는 고물가에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까지 커지면서 소상공인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서울 시내의 음식점에서 직원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위쪽). 지난 26일 저녁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중고 집기들이 쌓여 있다. 김빛나 기자·[연합]

지난 26일 저녁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 장사가 안 돼 일찌감치 가게문을 닫은 상인들로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폐업 음식점에서 중고 기기를 매입하는 박병래(76) 씨도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박씨는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곳보다 접는 가게들이 여전히 많아 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황학동 주방거리는 몇 달 전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중고 주방기기·집기거래가 활발할 것으로 기대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100일이 된 현재 오히려 ‘거래 절벽’이 심해지고 있다. 박씨는 중고 주방기기가 헐값이 됐다며 “상태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가격이 많이 낮아졌다. 대형 밥솥·냄비 같은 건 묶어서 3만~5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후 3년간 쌓인 적자를 이기지 못한 가게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매출이 일부 회복됐던 자영업자들은 ‘고물가 쓰나미’와 ‘빚의 역습’으로 여전히 비상상태다. 일부 자영업자는 정부에 민생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다시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27일 헤럴드경제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시스템을 통해 조사한 결과, 실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최근(5월 1일~7월 6일) 7891개 일반음식점이 폐업 신고를 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음식점 1만55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올해 폐업 가게 수는 적으나 당시에는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등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이었다. 2020년 같은 기간 코로나19 초창기에는 8127곳의 일반음식점이 폐업했다.

자영업자들은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도 삶이 팍팍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대하는 자영업자 시위에 나갈 정도로 열심이었던 카페 점주 김성호(35) 씨는 요즘 물가가 올라 가게 운영이 힘들다. 김씨는 “매출은 어느 정도로 회복됐고, 매장 크기가 큰 편이 아니라 대출도 적은 편인데도 원두·우유 가격에 치인다”며 “이제야 몇 년간 쌓인 손해를 극복 중인데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중고 물품 매입업체들도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중고 물품을 사들인다 해도 물건을 되팔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폐업 가게를 정리하는 A업체 관계자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폐업 문의가 많다”며 “특히 음식점의 경우 중고 기기가 워낙 많이 들어오다 보니 단가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래도 사려는 사람은 없다”고 토로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와 휴가철도 변수다. 27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0만285명이었다. 정부는 당분간 확진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날 자발적 거리두기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주택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신모(32) 씨는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집에 없어서 그런지 지난달 매출이 마이너스였다”며 “확진자 가세도 심상치 않은 데다 매출 회복이 요원해 여기서 뭘 더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 1000조원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부채를 일부 경감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25일 참여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자영업자·소상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해 설립될 예정인 새출발기금 조성 등의 방향을 밝혔지만 실효성 있는 한계채무자 구제를 위한 구체적 운영방안 등의 제시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자영업자의 소득대비부채(LTI)가 356%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을 넘어서는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다만 일부 자영업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있어 정책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칫 빚을 성실하게 갚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소수이긴 하지만 저금리대출을 받고 일부러 대출 상환을 하지 않는 자영업자들도 있다”며 “자영업자마다 사정이 달라 정부의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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