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8촌 이내 혼인 금지는 합헌”

사진은 기사와 무관. [123RF]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헌법재판소가 8촌 이내 친족끼리 결혼을 금지한 민법 규정이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다만 이미 혼인을 한 경우는 소급해서 신분관계를 모두 무효로 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마련해 혼란을 줄일 지는 국회가 법으로 정하도록 했다.

헌재는 27일 6촌과 혼인한 함모 씨가 민법 제809조1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다만 이 조항을 위반한 혼인을 소급해 무효로 하는 조항에 대해선 2024년 12월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

8촌 혼인금지 조항 합헌…“근친혼으로 인한 혼란 방지 목적 정당”

헌재는 “가까운 혈족 사이의 혼인의 경우, 서열이나 영향력의 작용을 통해 개인의 자유롭고 진실한 혼인 의사의 형성·합치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고, 성적 긴장이나 갈등·착취 관계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근친혼으로 인해 가까운 혈족 사이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 혼인을 금지한 것이 정당하다고 봤다.

헌재는 또 이러한 제한이 과거 동성동본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생긴 것으로, 목적과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친족 관념이나 가족 기능이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8촌까지는 혼인이 금지되는 친족이라고 보는 게 무리가 없다는 결론이다.

헌재는 “법률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가 외국의 입법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근친혼이 가족 내에서 혼란을 초래하거나 가족의 기능을 저해하는 범위는 가족의 범주에 관한 인식과 합의에 주로 달려 있으므로 역사·종교·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가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국가 사이의 단순 비교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미 한 결혼 ‘일괄 무효’는 헌법불합치…“국회가 기준 마련하라”

이번 결정으로 법원은 8촌 이내의 혼인신고를 받아줄 수 없고, 소송이 제기되면 혼인을 무효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신고된 혼인을 무효로 하는 조항은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국회는 2024년 12월 31일까지 어떠한 경우에 한해 무효가 되는 혼인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눌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나, 이미 혼인을 인정받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소급적으로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유 재판관 등은 “근친혼이 가족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정해 그 혼인을 무효로 하고 그 밖의 근친혼에 대해서는 혼인이 소급해 무효가 되지 않고 혼인의 취소를 통해 장래를 항하여 혼인이 해소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기왕에 형성된 당사자나 그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더라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고 했다.

함씨는 2016년 6촌과 결혼했다. 하지만 배우자가 6촌 사이의 혼인을 이유로 혼인무효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 혼인이 무효라고 판결하자 함씨는 헌법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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