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뭄에 타들어가는 ‘적도의 나라’…“마지막 비는 4년 전에” [골든아워 in 케냐 ①40년 만에 역사상 최장 가뭄]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의 로통와마을에서 주민이 지하 20m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지하수 관정 시스템이 없는 이곳 주민은 땅을 파서 물을 얻고 있다. 마을 남성들은 가축들의 먹이를 찾아 먼 곳으로 나가기 때문에 땅을 파서 물을 긷는 일은 여성의 몫이다. 지하 20m에서 양동이를 통해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 12명의 여자아이가 필요하다.(위쪽), 케냐 투르카나주의 소펠마을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이 물은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가 협업해 개발한 태양열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것이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케냐 투르카나주)]

“물을 길어 나르는 여자아이들이 도와주겠다는 남자들의 말에 혹해서 함께 나섰다가 임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에무론 실비아 칼로피리아초등학교 교장)

동아프리카 지역에 40여년 만에 찾아온, 역사상 최장의 가뭄은 적도의 나라 케냐를 그대로 강타했다. 마지막으로 내린 비는 4년 전, 척박한 땅에서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케냐 북서부 투르카나 부족은 4년째 ‘비가 오지 않는 우기’를 겪어내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6일(현지시간) 외교부 공동취재단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날아 투르카나주(州) 주도인 로드워 공항에 도착했다.

투르카나는 연평균 기온이 40도가 넘는 사막 기후의 땅으로, 케냐의 47개주(州) 중 두 번째로 가난한 곳이다. 이곳에는 염소와 소, 낙타 등을 키우는 유목민 투르카나 부족이 터를 잡고 있다. 주민의 85% 이상이 농업과 목축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형형색색의 목걸이를 여러 개 착용하는 것이 이 부족의 문화다.

로드워 공항에서 다시 비포장도로를 2시간가량 달려 다다른 로통와마을(Lotong‘wa Village)의 주민은 물을 찾기 위해 파낸 ’스쿱홀(Scoop Hole)‘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올려서 식수를 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얕은 물웅덩이였으나 계속된 가뭄으로 말라버린 물을 찾아 구멍을 파내려가면서 지하 20m에서야 물을 찾을 수 있다. 밖에서는 스쿱홀 안쪽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검은 구멍이다.

유목민 부족 특성상 남성들은 가축의 먹이와 물을 찾아 멀리 떠나기 때문에 스쿱홀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은 여성의 몫이다. 지하 20m에서 양동이로 물을 떠 지상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 12명이 필요하다.

가파른 스쿱홀을 신발도, 안전장치도 없이 내려가 물을 떠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하기에 상처를 입는 일은 부지기수다. 한 주민은 “지난주에 물을 구하러 스쿱홀에 들어갔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호소했다.

12명의 어린아이가 퍼올린 물은 사람이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뿌연 흙탕물이다. 한 양동이에서는 개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들은 양동이에 유니세프가 배포한 ‘아쿠아탭(Aqua Tab·발포정제 타입의 물 전용 살균 소독제)’을 넣어 침전물을 가라앉힌 뒤 위쪽 물만 마신다.

이 흙탕물이라도 구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은 매일 왕복 40㎞를 걷는다. 긷던 스쿱홀마저 말라버리면 옆의 스쿱홀을 파내려간다. 그래서 스쿱홀 주변엔 이 같은 구멍이 여럿 널려 있다. 물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흔적들이다.

케냐 국가가뭄관리청은 이달 월례보고서를 통해 전국 20개 지방(카운티)에 가뭄 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투르카나주를 비롯한 7개 지역이 극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발표했다. 식량 지원이 필요한 사람 수는 435만명이며,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집계했다.

우리 정부가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가고 있는 투르카나주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정부는 2019년부터 2023년을 목표로 국제기구(유니세프)와 협업해 투르카나주 기후변화대응력 강화를 위한 식수위생 개선사업(SCORE)을 시행하고 있다.

총액 700만달러(코이카 550만달러·유니세프 150만달러) 예산이 투입된 이번 사업으로 99곳에 대한 시추작업을 실시해 현재까지 50개의 태양광시설과 20개의 핸드펌프, 1개의 하이브리드시설 등 71곳의 지하수 관정으로 14만8098명에게 안전한 물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그네스 마카니 유니세프 식수위생전문가는 “SCORE사업을 통해 지하수 이용률이 증가해 9만8400명이 식수에 접근이 가능해졌다”며 “지하수 지점 기능성이 증대됐고 위생 개선과 기후대응력 증대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속적인 물 공급 시스템 운영·유지를 위해 70여개의 수자원 사용자협회를 조직, 역량 강화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급수시설은 투르카나 부족에게 ‘생명줄’이다. 더는 스쿱홀을 파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는 하염없이 걷다가 물을 발견하면 가축들을 먼저 먹였지만 이제는 일정한 곳에 펑펑 샘솟는 물이 있다. 물을 찾아 걷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또 다른 생계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또한 주민용과 가축용 시설이 분리돼 있어 함께 물을 마실 수 있다. 물이 생기면서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게 됐다.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물을 찾아 헤맸던 아이들이 돌아온 학교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의사 꿈을 꾸며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칼로피리아(Kalopiria)마을 학교 7학년생인 이레네 에모이는 “학교를 마치면 의사가 되고 싶다. 학교에 교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며 “물이 풍족해져서 정말 좋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을주민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태양열 급수 시스템을 “신이 보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존 로카위 칼로피리아마을 이장은 “이 시스템을 만들어준 한국 정부와 NGO단체에 감사하다”며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꿨고 깨끗한 물을 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케냐 투르카나=외교부 공동취재단·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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