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보험도 무용지물”…피멍드는 ‘빌라왕’ 피해자들

“집에 담보가 없었어요. 전세보증보험도 가입했고요. 안전한 신혼집을 구했다 생각했는데….” ‘1139채 빌라왕’ 피해자인 배소현(29)씨는 남편과 함께 발로 뛰며 직접 구한 신혼집 전세보증금을 순식간에 날릴 위기에 처했다. 배씨의 집은 현재 포천세무소에 압류가 걸려 있다. 지난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씨가 종합부동산세 62억원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씨는 전세보증금 보험에 가입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김씨가 사망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위변제 절차를 발지 못하고 있어서다. 대위변제는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채무자 대신 채무를 변제해 채권자의 채권이 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것으로, 김 씨 대신 HUG가 보증금을 배씨에게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배씨는 “HUG 쪽에서 대출을 연장해주긴 했지만 금리가 뛰어 이자도 2배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의 경우, HUG가 집주인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대신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김씨의 가족들이 상속 결정을 유보한 상태라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국에 1139채를 보유한 ‘빌라왕’ 사망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모인 피해자만 400여명. 경찰은 3년간 1000채 넘는 집을 산 김씨에게 배후인물이 있을 것으로 공범 여부를 수사 중이다. 해당 사건에 대해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세입자 합동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부동산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40대 김모 씨의 주변 인물을 수사 중이다. 김씨가 사망한 뒤 경찰은 건축주 등 집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공범이 있는지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확인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혼자서 1000채 넘는 빌라를 사기 어렵다고 판단, 사건 관련 피의자는 사망했지만 공범 여부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갭 투자(전세를 낀 매매) 방식으로 사들였고, 올해 6월 기준 소유 주택은 1139채에 달했다.

통상 계약 전 임차인은 김씨처럼 집주인의 재무관계가 복잡할 경우 전세 사기들을 고려해 계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 상당수는 계약 후 빌라왕에게 집이 팔리면서 계약 전후 임대인이 달라졌다. 피해자들은 등기부등본을 우연히 확인하거나 계약 만기가 다가와서야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악성임대인을 만나도 대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배씨는 “현재 본인 집이 빌라왕의 집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당사자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현재 피해자 카페에 모인 피해자 400명 대부분은 김씨의 사망으로 전세보증금을 못 받을 위기에 처했다. HUG는 집주인의 사망을 대비해 규정을 만들었으나 상속을 가정하고 마련된 기준이라 허점이 발생한 것이다. 김 씨처럼 가족들이 상속 결정 유보할 경우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현재 김씨 유가족은 상속인을 지정해야 하는 1월까지 상속 결정을 내리지 않을 예정이라 피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법인으로 계약한 피해자들도 있다. 법인의 경우 전세금 대출 연장이 2개월까지 밖에 되지 않아 연장 종료가 다가오는 피해자들이 있다. 집을 경매로 넘기려 해도 집주인이 사망해 경매로 넘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경우 시위 등 단체 행동까지 고려하고 있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토부와 법무부에 TF를 만들어 지원 하기로 했다”며 “법원에 등기명령 판단을 신속하게 받아냄으로써 전세금 반환 보증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셋값 급락으로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전세’ 피해자들은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부동산테크를 통해 공개한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 사고 금액은 1862억20만원으로, 10월(1526억2455만원) 대비 22% 늘었다. 같은 기간 사고 건수는 704건에서 852건으로 증가했 다.

김빛나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