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의 커피 이야기] 현대 커피의 원형, 튀르키예 커피

멜랑콜리를 생의 의지가 꺼져버린 상태라고도 한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닌, 그렇다고 생명의 불이 활활 타고 있지도 않는 그저 불씨로 변한 불꽃이 잿더미 아래 숨죽이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멜랑콜리란 단어를 들을 때면 언제나 신의 한숨이 떠오른다. 잿더미 아래로 숨겨져 버린 천국들과 그 잿더미를 헤집어 천국의 불씨를 찾을 의욕마저 사그라져버린 우리들 가운데 자리한 신의 한숨.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 누군가는 일상을 살며 웃고, 누군가는 연말의 설렘을 만끽하는 이 계절에 문득문득 불어오는 신의 한숨. 이 한숨이 피부에 닿을 때면 생각나는 커피가 있다. 터키쉬 커피로 알려져 있는 튀르키예 커피다. 튀르키예 커피는 현대 커피의 원형이다.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꽃으로 피어 유럽으로 전파되어 지금의 커피 문화로 열매 맺힌 현대 커피의 원형이다.

튀르키예 커피는 체즈베나 이브릭이라 불리는 커피 팟에 곱게 간 커피와 카다멈(생강과에 속하는 향신료) 그리고 설탕을 함께 넣고 단순하게 끓여내는 커피다. 커피를 곱게 갈아 끓여 필터 없이 바로 컵에 따라 마시기에 커피 미분이 주는 묵직한 바디감과 커피의 쓴맛, 그리고 카다멈의 스파이시한 향, 그리고 설탕으로 힘을 준 달달한 맛의 조화가 좋다.

튀르키예에서는 커피를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묵직한 바디감은 지옥이라기보다는 슬며시 올라오는 슬픔을 가만히 눌러주는 거대한 존재의 위안처럼 느껴지고, 스파이시한 향은 죽음보다는 멜랑콜리한 감정 방울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터트려주는 신의 지팡이 같고, 달달한 맛은 심연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감싸 올려주는 사랑이 많은 자의 긍휼함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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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goturkiye.com

우울할 땐 이브릭을 꺼내 들고 다크하게 볶은 과테말라나 예멘 커피를 곱게 갈아 카다멈 가루나 계피 가루를 살짝 더해 튀르키예식 커피를 마신다. 요즘은 커피 지방을 제거하기 위해 이브릭으로 끓인 커피를 필터에 걸러서 마시기도 하지만 그러면 사실 튀르키예 커피의 참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튀르키예 커피를 다 마시고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 마신 커피잔에 남은 커피 찌꺼기 문양을 읽어 커피점을 보는 것이다. 뭐 물론 커피점을 읽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 점괘가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지만 커피를 마실 때마다 우리 일상에 간섭하는 신의 뜻을 묻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은 자들의 헛짓거리가 아니라 신의 뜻에 항상 예민하게 열려있고 싶은 사람들의 신심으로 읽히기도 한다.

살다 보면 주기적으로 멜랑콜리가 찾아온다. 멜랑콜리가 찾아올 땐 튀르키예식 커피를 한잔으로 그 멜랑콜리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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