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2022.11.29 사진공동취재단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북한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월북한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엔군사령부에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18일 무단 월북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여 만에 처음으로 킹 이병의 신병에 대한 응답이 나온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3일 킹 이병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유엔사에 북한이 처음으로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북한이 유엔사의 연락에 ‘메시지를 받았다’고 확인했지만 의미 있는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었다. 유엔사는 북쪽 판문각과 연결된 직통전화 일명 ‘핑크폰’으로 하루에 두 차례씩 통신점검을 하고 있다.
BBC의 보도는 북한이 킹 이병 구금 사실을 확인하면서 한 걸음 내딛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유엔사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북한의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거절했다. BBC는 “이와 같은 응답은 북한이 킹 이병과 관련한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돼있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고 보도했다.
킹 이병의 무단 월북은 북한이 이른바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발생한 돌발상황이었다. 월북 당일 서울에서는 한미 확장억제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이 첫 회의를 개최했고, 이를 계기로 미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이 42년 만에 한반도에 전개됐다.
지난달 27일에는 제70주년 ‘전승절’을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첫 외빈으로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이 참관한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특히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무기를 소개하면서 북러 간 군사협력이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킹 이병에 대해 국내외로 침묵해 온 북한이 큰 행사를 마무리한 만큼 킹 이병 신병에 대한 처리 방식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킹 이병의 심문 조사 과정에서 월북 경위와 귀순 의사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종합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고 대화의 시기를 저울질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현재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있다면 구금한 병사를 선의로 돌려주고 높은 단계의 대화와 협상으로 가려고 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화와 협상의 건으로 병사의 안부를 전하고 기회를 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어떻게 협상하고 대화할지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당장 쾌도난마처럼 바로 해결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