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돈으로 친구를 사는 세상

세상이 참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조카 녀석이 한껏 꾸민 채 집을 나서는 것을 보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예상 밖으로 “운동하러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차린 모양새가 무슨 파티라도 가는 것 같다고 하니 하는 말이 “요즘은 운동이 아니라 친구 사귀러 체육관에 간다”라며 “친구 사귀는데 돈 많이 들어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친구와 만나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다 보면 돈이 들기는 하겠다만 친구 사귀는 것 자체가 돈이 든다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 온 조카와 한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친구 사귀는데 돈이 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야 인터넷도 없고 뭣도 없으니 친구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렸는데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친구를 만들 방법이 없다고 했다.

친구를 사귀려면 모임(클럽)등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돈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타일 좋고 몸 좋은 친구를 만들러 가는 체육관에 한달 200달러, 향후 취업 및 네트워크를 위한 클럽 연회비 3000달러,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 월 200달러, 등등 얼마 전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 감당하기에는 꽤나 버거운 돈이 친구 사귀는데 전부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만지작거리는 게임 콘솔도 알고 보니 1000달러나 들여 산 것이고 이런 저런 게임팩도 각각 60달러는 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는데 온라인 게임으로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을 써가며 각종 모임을 나가는 조카 녀석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아 다시 물어보니 “뭐 그냥 외롭고 그렇죠”라며 “진짜 친구가 어디 있어요, 부부끼리도 남남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외롭기 싫어서 돈을 쓰는 거 아닐까요?”라고 되묻는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그럴 듯하다. 사실 친구를 사귀려면 어느 정도 비슷한 취미와 사고방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인종, 언어, 그리고 소득 등 아주 다양한 부분에서 합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다 보니 돈을 쓰지 않으면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정기적인 소통과 교류도 힘들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런 청년층의 외로움을 잘 공략하면 이게 또 돈이 된다.

최근 청년층에게 급격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오렌지시오리 피트니스 센터 등 일부 사업층은 이른바 Z 세대 만을 집중 공략해 지난 수년 사이 사업 규모를 2배 이상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외로움을 싫어하고 교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을 쓰겠다는 세대에게 소속감을 선물하는 것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서비스를 통해 연결되는 ‘친구’, ‘네트워크’가 돈이 되는 시스템이다.

다시 한번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끼면서 돈으로 관계를 사는 요즘 상황이 조금은 안타깝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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