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중국인 관광객 류모 씨가 즈보(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중국 소비자들이 물건을 주문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김희량 기자 |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코로나19 전엔 25일에 한 번, 1년에 12번은 서울에 왔죠. 작년엔 4번 정도 들어왔는데 올해는 언제 또 한국에 올지 모르겠어요.”
2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중국인 30대 류모 씨는 이른바 ‘따이궁(代工,보따리상)’이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의뢰받은 제품을 구입해 중국에 판다. 엔데믹 후 그의 한국 방문 횟수는 과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벌던 수수료도 줄었다. 그는 “예전에는 한 번 오면 2만위안(365만원) 정도를 가져갔는데 요즘에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부업 삼아 오는데 재미도 예전보다 덜하다”고 말했다.
단체 여행객 중심에서 ‘싼커(遊客,개별 여행객)’ 중심으로 중국 관광객의 성향이 바뀐 가운데 한국의 쇼핑관광 매력이 떨어졌다는 반응이 감지된다. 한국을 찾은 이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사이 중국 내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됐고, 하이난 등 현지 면세점이 성장한 것이 주된 배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 허베이성에서 온 30대 왕모 씨는 “과거 화장품은 한국 제품을 찾았지만, 이제 중국 화장품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올라갔다”면서 “중국 현지에도 나이키 등 브랜드 매장이 많아져 한국에만 있는 제품 말고는 쇼핑 매력도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의 한 매장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김희량 기자 |
그는 이어 “코로나19 때부터 스마트폰 위주로 생활하면서 즈보(直播, 라이브커머스)가 삶의 일부가 됐다”며 “왕홍(,온라인 인풀러언서)과 업체가 계약해 특가로 파는 물건을 주문하면 하루 만에 온다”며 달라진 소비문화를 설명했다.
한국의 낮아진 선호도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중국인 방한 관광 트렌드 변화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관광객의 숙박비, 교통비, 문화서비스·오락비 등 지출은 증가했으나 1인당 쇼핑비는 2019년보다 312.3달러로 유일하게 줄었다. 중국 관광객의 쇼핑 관광 비중 역시 2019년 72.5%에서 2023년 49.5%로 감소했다.
저가 제품은 중국 현지에서, 고가 제품은 하이난 등 면세 특구에서 구매하는 수요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 현지의 배송 속도와 가격이 유리해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부의 면세 산업 육성과 내수 소비 진작 정책이 자국 내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가 ‘제2의 홍콩’을 지향하며 육성하는 하이난의 CDFG(China Duty Free Group)는 코로나19 시기에 세계 1위로 등극하며 고속 성장 중이다. 하이난을 다녀오면 온라인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다. 2020년 7월부터 완화된 하이난의 면세 한도는 연 10만위안(1832만원)에 달한다. 이런 변화로 하이난의 면세점 12곳의 지난해 춘제 기간 매출은 약25억7200만위안(4883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수치의 3배를 웃돈다.
2일 중국인 관광객 류모씨가 즈보(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중국 소비자들이 물건을 주문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김희량 기자 |
국내 면세업계는 지난 2022년 7월 중국 최대 물류회사인 순펑 익스프레스가 정부와 공동 투자해 건립한 세계 4위, 아시아 1위 규모의 후베이성 어저우 화후 화물전용 공항이 물류 상황도 개선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항 개장 후 현지 업체들은 ‘국내 1일, 주변국 2일, 글로벌 주요도시 3일 배송’을 강조하며 2025년 245만t(톤)의 물동량을 자신하고 있다.
중국의 소비 침체도 국내 면세업계의 부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중국의 2023년 1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5% 하락해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같은 시기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 감소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 하락(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현지에서도 소비 부진으로 인해 상품 재고가 늘어 가격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가성비를 찾는 이가 늘며 한국산보다 저렴한 중국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 많은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물건을 사서 현지에서 파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진짜 관광객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면서 “이제 ‘유커’든 ‘싼커’든 진짜 관광을 원하는 이들만 한국을 찾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