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투자자 위해 금투세 폐지? 증권거래세는? [홍길용의 화식열전]

꼭 1년 전인 2023년 1월 3일 국토교통부는 신년 업무보고 형식으로 ‘1·3대책’을 발표한다. 규제지역을 해제하고 분양가상한제와 전매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이 시행령이나 규칙만 바꾸면 가능한 조치였다. 다만 수도권의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는 법개정 사항이었다. 정부가 한다고 해서 기대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관련 법 개정은 국회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의 시행을 거부(재의요구)할 수 있지만 법률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권한은 없다. 대통령과 정부가 뭔가를 한다고 발표할 때 법 개정 사항인지 아닌지 반드시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설령 여당이 국회 의석 과반을 가졌다고 해도 낙관하기 어렵다. 해당 법안에 쟁점이 많다면 관련 상임위 처리(조정안 채택)에 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이 필요(국회법 안건조정제)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방침을 밝혔다. 소득세법에서 금투세 신설 조항은 2025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금투세 폐지는 법개정 사항이다. 21대 국회 의석구조라면 야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22대 국회에서 여당이 과반을 차지할 지는 알 수 없다. 세금 안 걷겠다는데 싫어할 이는 적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에도 부담일 수 있다. 그런데 금투세 폐지 득실은 좀더 살필 필요가 있다.

금투세는 연간 양도차익이 5000만원 이상일 때 적용된다. 한 해에 이 정도 수익을 낼 만한 돈을 굴리는 개인투자자는 전체의 0.11%(10년 평균 주식거래 내역 기준)에 불과하다. 개인투자자 세 부담을 줄여 증시를 활성화하겠다 것이 금투세 폐지 추진의 명분이다. 다수의 소액투자자는 과세 대상이 아니지만 큰손들이 세 부담으로 주식을 팔지 않으면 주가 하락이 제한돼 간접 혜택을 본다는 논리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는 대부분의 선진국 증시에서도 금투세가 시행 중이다. 우리 증시의 개인투자자 비중이 선진국 대비 높은 편이지만 외국인이나 기관들보다는 증시 영향력이 약하다. 금투세 도입이 증권시장 활성화를 막는다고 할 수 있을까? 부자들이 세금 부담 때문에 주식을 팔아야 할 이유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세금 부담이 없으면 더 과감하게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다.굳이 세 부담을 피해 차익실현을 매년 나눠서 해야 할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투세 폐지로 장기투자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 역시 존재하는 셈이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현대 세제의 기본이다. 우리 소득세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주주’가 아니면 상장주식 양도소득에 과세를 하지 않는다. 그나마 정부는 얼마전 시행령을 고쳐 ‘대주주’의 범위를 극도로 좁혔다. 증시 활성화가 명분이다. 금투세 신설은 3년 전 지금의 여야가 과세 형평을 위해 필요하다는데 합의한 결과다. 증시 활성화와 과세 형평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보통 거래의 대가는 중개자에게 내는 수수료다. 우리나라 증권 거래에는 세금까지 붙는다. 세율(1만분의 35)은 시행령으로 낮출 수 있다. ‘자본시장 육성을 위하여 긴급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다. 법 제정 이후 줄곧 탄력세율이 적용됐다. 납세 부담을 낮추는 조정이지만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59조와 어울리지 않는다. 금투세를 만들면서 증권거래세는 없애기로 한 이유다.

금투세는 상위 0.11%의 투자자에만 해당되지만 증권거래세는 모든 투자자가 낸다. 선진국에는 증권거래세가 없다. 우리 증시가 선진국과 차별화되려면 증권거래세도 없애야 한다. 금투세 백지화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증권거래세를 ‘영(0)’으로 만드는 것은 시행령 개정 사항이다. 정부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증시활성화가 중요하다면 연 6~9조원 정도의 세수 감소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윤 대통령이 지난 연말 깜짝 발표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만한 사안이었다. 관련법(도시정비법)은 주요한 관련 기준을 모두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기준이 되는 노후·불량 건축물에 대한 판단이나 안전진단의 대상·기준·실시기관·지정절차 등이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정부가 1월 중 관련 대책까지 내놓겠다고 공언한 배경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서는 법률 제·개정에 대한 정당의 입장이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공약이 난무하는 것처럼, 총선을 앞두고 행정부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약속하는 것도 어색하다. 권한 밖의 사항에 대한 약속은 공수표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으니 정부가 총선에서 여당을 돕고 싶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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