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 배드파더스, 유죄…대법 “사적 제재”

대법원.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1. ‘나쁜 아빠’ A씨는 밀린 양육비가 수천만원이 넘었다. 경제 사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취미로 골프를 즐겼다. 고급 외제차를 끌었다. 하지만 이혼 후 7년간 지급한 양육비는 6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양육비를 달라는 요구에 “아이와 무릎을 꿇으면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2. 첫 번째 면접교섭일이었던 크리스마스에도 ‘나쁜 엄마' B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딸은 이혼한 엄마를 기다렸지만 B씨는 강남 클럽에서 파티를 벌였다. B씨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연락도 두절됐다. 둘째 딸이 죽고나서야 B씨는 전 남편에게 연락했다. “죽은 아이 몫 양육비 50만원은 포기할 거지?”

이처럼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 A씨, B씨 등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 운영자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여론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오전, 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모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의 이름, 거주지, 직장명, 얼굴사진 등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지금은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 구씨는 2018년부터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기소 단계 때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현행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게시물이라도 비방 목적이 아니라 공익 목적이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데, 배드파더스가 여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컸다. 구씨 측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라고 했고, 검사 측은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공적 관심 사안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예상을 깨고 무죄가 선고됐다. 수원지방법원 11형사부(부장 이창열)는 2020년 1월,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 무죄 의견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배드파더스의 활동 목적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비방 목적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양육비 문제는 법률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며 “양육비 채무 불이행은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 채무와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에선 유죄로 판결이 뒤집혔다. 2심을 맡은 수원고등법원 1형사부(부장 윤성식)는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일정기간 선고를 미루는 판결이다. 2년간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선고 자체가 없었던 일이 돼 선처에 해당하지만 무죄 판단은 아니다.

2심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법률상 허용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사적 제재수단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신상정보가 제한 없이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이 중대하게 침해될 소지가 있다”며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하는 것은 공개 범위가 과도해 공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2심) 판단에 대해 수긍했다. 대법원은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며 “배드파더스가 피해자들의 얼굴 사진, 구체적인 직장명 등을 공개함으로써 피해의 정도가 현저히 크다”며 “위와 같이 상세한 정보까지 공개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이들을 공적 인물로 보거나, 합리적 비판 등을 수용해야 하는 공직자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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