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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은행 업계를 돌아보면
‘Nosedive’란 단어가 있다. 비행기의 기수가 마치 사람의 코 모양과 같다는 것에 비유한 Nose와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뜻의 단어인 Dive를 결합한 것으로 흔히 예상치 못한 급락으로 상황이 크게 악화됐을 때 사용한다.
지난 한해 미국 은행은 대마불사(大馬不死·쫓기는 대마가 위태롭게 보여도 결국 살길이 생겨 죽지 않는다는 뜻,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뜻의 경제 용어로 자주 쓰인다)란 말이 무색하게 무려 5곳의 중견 은행(실리콘 밸리, 시그니처, 퍼스트 리퍼블릭, 허트랜드 트라이 스테이, 시티즌 뱅크)이 연이어 순간에 몰락하는 ‘Nosedive’ 현상이 나타났다중견 은행의 위기설에 처음 나올 때만해도 시장은 지난 2008년초와 같이 순진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08년 3월 당시 투자 은행(IB) 베어스턴스가 무너졌지만 JP 모건이 이를 곧 인수한 사실과 스탠다드푸어스(S&P)지수가 연초 대비 10%이상 급락했음에도 6월 반등한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당시 기준금리는 2년 사이 무려 5배가 넘게 올랐었고 이에 따른 위기설도 팽배했었다. 결국 3개월이 지난 9월 리먼브라더스라는 세계적 금융기업이 무너지고 S&P가 반토막이 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이 상황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은행의 줄도산과 매우 유사하다. 연준의 연이은 금리 인상과, 이자율 부담에 따른 부실 증가, 경기 침체 등….
물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 정부부처는 물론 각 은행별로 각종 보안책을 강구한 결과 위기에 대한 내성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 때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치솟은 금리로 인해 부동산의 공실은 급증하고 있고 특히 상업용 부동산의 상당수가 대출금리에 따른 재융자 문제로 차환에 문제를 겪고 있다.
올 연말 만기가 돌아오는 상업용부동산 저당증권(CMBS) 규모만해도 1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것이 부실 처리될 경우 중소 은행의 위기는 다시 커진다. 이에 더해 지난 수년간 초 저금리로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했던 투자등급 미만 기업들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연쇄 도산한다면 그야말로 은행 업계에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은행의 대응책은 무엇일까?
2024년 은행 업계 화두는?
남가주 소재 한인은행들을 비롯 미국 각지의 은행들이 공개한 2024년 경영 목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적 목표라면 ▲뱅크런 방지를 위한 지속적인 예금 확보 ▲신규 고객 유치, ▲기존 고객과의 관계 강화 ▲IT를 중심으로 한 개혁과 혁신 ▲지출 비용 절감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예금 확보 및 신규 고객 유치 그리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 강화 등은 사실 당연한 목표이자 매년 반복되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IT를 중심으로 한 개혁과 혁신 그리고 지출 비용 절감 등은 생각 보다 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은행업계에서는 급격히 진행되는 디지털 혁신으로 인해 금융 및 비금융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은행들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크게 늘렸지만 오히려 조용한 이탈(Silent attrition)이라는 원치 않은 결과를 받아 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첨단 솔루션을 활용한 초개인화 서비스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초도 비용 투자에 대한 부담이 막심할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리턴이 빠르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당장의 실적에 따라 그 자리보전을 걱정해야 하는 고위 경영진 및 행원들은 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대안을 원하고 있다. 바로 비용 절감에 따른 수익 증가가 그것이다.
이 부분의 핵심은 수익 증가가 아닌 비용 절감에 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의 설문 조사 결과 미국 은행의 85% 가량은 비용 절감이 중요 과제 중 하나라고 답했다.
절약 목표로는 70% 이상이 최소 10%라고 답했고 80% 이상은 목표달성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우선 비용 절감에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구조조정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3분기 기준 한인은행의 직원수는 약 2890여명이고 평균 임금은 10만달러를 넘기고 있다.
이는 1년전에 비해 직원수는 약 3% 감소한 수치다. 뱅크오브호프와 한미, PCB, 그리고 CBB는 직원수가 줄었고 오픈, US 메트로는 증가했다. 직원수가 줄어든 데 반해 임금은 1년 사이 8%가 넘게 올랐다. 만약 상황을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직원 10명만 줄이면 1개 지점의 1년간 기본 운영비에 가까운 1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각 은행원 별 역할이 다르고 이들 직원의 업무 대체를 위한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비용 절감 효과는 계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고 크게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감원에 연관된 또 하나의 방법은 지점 폐쇄다. 앞서 언급했듯 단순 계산으로는 지점 1개 문 닫는데 약 100만달러 이상의 기본 비용이 줄어들고 지점 당 고용인원까지 고려하면 이 역시 즉각적인 비용 감소 효과는 있다. 물론 이 역시 지점 폐지에 따른 고객 이동 및 업무 대체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일부 은행의 경우 인력 감소를 최소화 하는 대신 일부 베네핏을 줄이거나 출퇴근 시간 유연화 등의 대안도 활용하고 있다. 구조 조정과 관련한 특징으로는 은행들의 절대 다수가 구조조정 및 인력 줄이기에 몰두할 뿐 경영진 교체나 고위 간부 임금 조정 등도 가능하다는 비율은 40%선에 그쳤다.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기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은행 업무와 연관된 지출 분야를 계산해 보면, 각종 사무용품과 유틸리티, 아웃소싱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디지털화로 종이 서류나 각종 출장 비용을 줄이고 필요 물품의 일괄 구매를 통한 비용 절감, 아웃소싱 입찰 따른 가격 인하 또는 내부 인력으로의 대체(데이터 분석 등) , 근무 및 재택 인력 등을 고려한 임대 공간 줄이기, 각종 홍보물 온라인 대체 그리고 외부 스폰서십 확보에 따른 수입 증대 등등이 그것이다.
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모든 관련 물품 구매 통로를 일원화하고 아웃 소싱을 줄임과 동시에 입찰을 통한 가격 경쟁을 활성화하고 지점 이전 등 다양한 방법을 실천한 결과 관련 지출의 30%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이 은행의 경우 지점 전체의 청소 및 관리에 무려 수백개 이상의 벤더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괄 점검 후 이를 지역별 대형 업체 몇 곳에 나눠 맡긴 결과 이와 같은 비용 절감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전화 등도 지역별 대형 업체에 맡기면서 필요한 만큼의 전화선과 인테넷을 사용하니 전년 대비 비용 지출을 35% 가량 줄일 수 있었다.
외부 인력 고용에서도 직업군을 면밀하게 분석하니 약 100개가 넘던 부분을 20여개로 줄일 수 있었고 이를 외부 용역업체에 문의하니 비용이 30%이상 낮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중형 은행의 경우 각종 법률 검토 문제를 외부 로펌에 의존해왔는데 업무 대부분을 내부 변호팀을 만들어 운영하니 관련 비용을 30%이상 줄일 수 있었고 이 결과 외부 법률 법인 지출 비용도 크게 감소했다. 이외에 특별한 대외비나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업무는 다양한 로펌에 가격 경쟁을 붙여 예전 대비 40%이상 낮은 가격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세번째는 AI 등을 통한 업무 자동화 및 기타 신기술 도입에 따른 효율성 향상이다.
은행들을 대상을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주요 경영진의 약 90%는 신기술에 따른 업무 향상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서류 처리 작업 및 고객 대응 자동화(챗봇 등)은 물론 리스크 조기 감지 및 처리 클라우드를 이용한 데이터 관리 등은 특히 만족도가 높은 부분이다.
네 번째 사항 역시 AI 등과 깊은 연관이 있는 부분이다.
최근 미 중소형 은행들을 중심으로 ‘상품 및 고객 줄이기’에 열중하는 모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새로운 서비스 제공 및 신규 고객 영입과는 사뭇 반대되는 것이지만 사실 그 목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계좌 등을 과감히 정리해 이에 따른 비용 지출을 최소화 하고 실제 수익을 높인다는 것이 그 목표다.
은행들은 AI를 통해 막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 이를 바탕으로 투자 대비 실 수익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얻은 결론을 기준으로 다이어트에 들어가고 있다. 소형 은행들의 경우 몸집 키우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지만 자산이 일정 수준이 지나고 영업망의 범위가 기준치를 넘어가게 되면 확장 보다는 실속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한인 상장은행의 한 간부는 2024년도 지출 감소 및 수익성 향상을 위해 4단계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간부는 “구조조정 및 지출 분석 등으로 당장에 소요되는 돈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이렇게 지출을 줄이게 되면 거기서 나온 수익을 기업 대출, 및 무이자 예금 확보 등에 투자해 기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고 체질 개선 후에는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만 집중해 지속적 성장을 위한 변화를 완성하겠다”라며 “이를 달성할 경우 장래에는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수익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게 될 부분은 무엇일까? 은행 경영진들은 예금 이자 지출과 부동산 시장의 부실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고 있다. 연준이 기준 금리를 가파르게 올린 지난 1여 년간 은행들의 순이자 수입은 약 18%나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 유치를 위한 이자율도 빠르게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 미 대형은행들 예금상품의 평균 이자율은 2.2%, 중소형 은행은 2.5% 선으로 집계됐다. 대출 증가폭이 지지 부진한 상황에서 예금 이자 지출이 크게 늘고 머니마켓 등 기타 상품들 역시 이자 지출을 피할 수 없다.
한인은행을 포함한 소형 은행들의 상황은 사실 이 보다 더 좋지 않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4~5%에 달하는 이자율을 지급하다 보니 당장은 예금고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금리 인하가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올 수 있다.
실제 수 년 전 한인은행들 상당수가 고객 유치를 위해 이자율을 올렸다가 이를 정리하기 시작하며 상당수의 고객을 잃었던 선례도 있다.
지출과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을 수 있지만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증가도 상각 처리로 이어질 경우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특히 오피스 시장의 경우 지난 수년간 가치가 30% 이상 급락하며 절대 다수가 부실 위험에 처해 있다. 높은 이자율로 재융자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부실로 처리되기 시작하면 결국 그 마지막 부담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 전체 대출에서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는 중소형 은행들에게 돌아간다.
은행 나름대로 부실에 대비한 예비금을 확보한다고 해도 연쇄 부실이 시작되면 손실폭은 기하 급수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한인 은행권 관계자들은 “2024년 금리와 이자 부담, 대출 감소 등으로 순이자 마진(NIM)이 감소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은행들이 4%를 넘기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효율성(Efficiency ratio)과 자산이익(ROA) 그리고 자본 이익(ROE) 도 지난 수년래 최저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며”예금 이자 지출을 최대한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고 위험 대출을 최대한 줄여 혹시 모를 부실에 대비하겠다”고 답했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