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29.6만명 임금 1.53조 떼였다…직장인 “반의사불벌죄 폐지”

전국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위니아딤채지회와 위니아전자지회는 지난해 10월 16일 광주시청 앞에서 임금 체불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법에서 금지한 임금체불을 우습게 여기는 악덕 사업주가 늘고 있다. 지난해 1~10월 기준 체불액(1조4500억원)이 벌써 지난해 연간 체불액(1조3472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11월 임금체불 기획감독을 통해 최대 규모 체불액을 적발하고,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다만 현장에선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폐지가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준 임금 체불액은 1조4500억원에 달한다. 이미 2021년(1조3505억원)과 2022년(1조3472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체불액 1조350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임금체불액 총액은 약 7조6500억원이다. 같은 기간 임금체불 피해근로자 수는 148만명에 달한다. 매년 약 29만6000명의 근로자가 약 1조3500억원의 임금을 떼였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시작을 ‘노사법치’로 규정한 정부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고용부는 반복되는 상습체불을 뿌리뽑기 위한 근로기준법과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정식 장관의 새해 첫 현장행보도 ‘임금체불’이다. 이 장관은 성남지청과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를 찾아 근로감독관들과의 간담회를 열고 체불감독과 관련한 고충을 듣고, 체불 관련 강제수사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 국회 처리를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상습 체불 사업주를 정의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 제한 등 불이익을 더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은 3개월분 임금 이상 체불(퇴직금 제외) 또는 5회 이상 체불+체불총액 3000만원(퇴직금 포함) 이상인 경우 상습체불로 정의한다.

상습체불자에 대해선 신용제재를 가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보조·지원도 제외한다. 현재 미지급 임금에 대해선 퇴직자에 한해 연 20% 수준의 지연이자가 부과되는데, 이를 재직 중인 근로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담겼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의한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도 다시 추진한다. 체불임금에 대해 사업주가 대지급금보다 융자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근로자는 체불임금을 종전보다 빨리 받을 수 있다. 대지급금제도는 정부가 임금 체불 피해를 겪은 근로자를 위해 대신 변제하고 변제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임금 체불 문제 해결에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5년간 2회 이상 반복 체불한 사업주는 전체 체불 사업주의 약 30%다. 이들의 체불액 비중도 전체의 80%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임금을 떼먹는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9~11월 상습·고의적 임금체불 의심 사업체 119곳과 건설현장 12곳에 대해 기획감독을 한 결과, 91억원이 넘는 체불임금을 적발하고 이 중 69개사, 148건의 법 위반사항에 대해 즉시 사법처리했다. 또, 작년 12월 11~31일엔 ‘임금체불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

다만 직장인들은 임금체불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반의사불벌죄 폐지’라고 본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이 지난 9월 1~6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26.7%는 임금체불 개선을 위해선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는 2005년 도입됐다. 사용자에게 ‘합의 동기’를 제공해 체불임금 청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을 떼인 근로자 입장에선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떼인 임금을 받는 것”이라며 “사업주부터 처벌할 경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가 떼인 임금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반의사불벌죄를 악용, 합의를 종용하는 사업주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41명의 노무사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법률지원단체인 직장갑질119는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가 오히려 ‘체불임금 중 일부만 받겠다고 하면 돈을 빨리 주고 상황을 끝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황당한 합의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은 이를 수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반의사불벌죄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