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이스라엘 해군 경비정 한 척이 홍해를 항해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주요 교역로인 홍해에서 후티(친이란 예멘 반군)의 민간 선박 공격으로 물류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공급망 혼란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기존 통념보다 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이시원,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등 경제학자는 화물선의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무역항의 혼잡도를 측정해 연구를 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이 빗나간 데는 물류망 혼란에 따른 인플레이션 여파를 잘못 평가한 측면이 일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 판단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문제가 처음 대두 됐던 2021년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해 다수 경제학자는 이를 일시적 문제로 치부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활동 재개와 공급망 혼란으로 물가가 급등했지만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화물운임과 제조업 설문을 바탕으로 집계하는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에 따르면 공급망 혼란은 2022년 들어 완화됐고 그해 9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이후에도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구인난 등 빡빡한 노동시장 환경에 따른 임금 상승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식의 해석이 힘을 얻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물가를 잡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감내해야 한다는 해법이 도출되는데, 실제로는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세가 둔화했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등 연구진은 공급망 혼란이 일시적이었던 것은 맞지만 대다수 학자의 예상보다는 길었던 데서 그 이유를 일부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화물선이 항구에 정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바탕으로 혼잡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항구 도착 후 화물을 내리거나 싣는 데 지연을 겪고 있는 화물선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었다.
2019년 평균 29%였던 이 지표는 2020년 말 올라가기 시작해 2022년 초에는 35%를 기록했다.
뉴욕 연은의 기존 지수와 달리 이 지표에 따르면 물류 혼란은 2022년 7월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 하락 전환했으며, 몇 달 뒤 근원 인플레이션(에너지·식품 제외)도 하락세로 바뀌었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는 연준이 당시 기준금리 인상을 빨리 시작했다면 인플레이션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것으로 봤다.
이어 자신들이 고안한 모델에 따르면 공급망 혼란으로 물가가 수요 변화에 이례적으로 민감해진 만큼 수요를 잡는 것이 물가 진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향후 공급망 충격이 있을 경우 중앙은행이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공급망 문제가 일반적 인식보다 더 오래 지속됐다면 2022년 당시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하고 지난해에는 진정됐던 것을 납득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들어 수에즈 운하 인근 홍해에서의 긴장과 파나마 운하 부근의 가뭄 등으로 물류난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는 상황에 해당 연구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WSJ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