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회담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새롭게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개발도상국 국가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을 누르고 세계 1위 인구대국이 된 인도, 자원강국 인도네시아,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몇 년새 이들 국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존재감이 급상승중이다.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 자본 등 각각의 경쟁력을 내세운 강력한 ‘고성장 정책’이 먹히면서다.
다만 과거 가파른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산업화가 노동집약적 형태에서 기술·자본집약적 형태로 이미 전환을 이뤘고,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국가 주도의 성장이 지속될지 등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5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
지난 2022년 8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델리에서 열린 독립 25주년 기념사에서 줄곧 ‘선진국’과 ‘인도’라는 단어를 동일선상에 놓으며 강력한 성장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12월 한 행사에서 “세 번째 임기에는 인도를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올려놓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올해 총선을 앞둔 인도 정부는 지난해부터 ‘2047년 선진국 진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공개했다.
인도중앙은행(RBI) 연구에 따르면 인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현재 약 2500달러(약 320만원)다. 이 규모가 2047년까지 2만1664달러(2700만원) 이상으로 늘면 세계은행(WB) 기준 고소득 국가가 될 수 있다.
선진국을 향한 인도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모디 총리는 지난 2014년 취임과 함께 ‘메이드 인 인디아(Made in India)’를 앞세운 자국 제조업 부흥 등 이른바 ‘모디노믹스’에 시동을 걸었다. 단순히 노동집약적 산업을 통한 경제 성장이 아닌 최첨단 제조업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 모디식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이를 위해 인도 정부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까지 불사하며 산업 발전을 전폭적으로 지원 중이다.
실제 지난해 8월 인도는 자국에서 노트북과 PC 등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중 갈등 구도를 활용해 탈중국 제조기업들을 인도로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의 모습 [로이터] |
인도네시아도 고소득 국가 진입을 꿈꾸는 대표적 국가로, 목표 시기는 오는 2045년이다. 지난달 스리 물랴니 인도네시아 재무 장관은 인도네시아 경제가 선진국 대열 합류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 6~7%대의 성장률을 기록해야한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글로벌 수준에서 인도네시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개혁을 시행해야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가 추진하는 고성장 전략의 핵심은 자원이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인 니켈 최대 보유·생산국으로, 최근 몇 년전부터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 내에서 핵심광물의 채굴부터 가공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하는 ‘자원 공급망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14년부터 니켈 광석 수출을 금지한 상태다.
자국 내에서 니켈 원석을 정제토록 한 이 같은 수출 규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의도했던 해외 직접투자 급증으로 이어졌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전세계 제련 및 배터리,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수출 금지 조치 시행 3년만에 배터리 및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150억달러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 투자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지난 2022년 외국인 직접투자는 금속 부문에만 109억달러에 달했다.
지난 2016년 한 행인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진행된 사우디 비전 2030 관련 기자회견장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 |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미 부유한 산유국가들은 비석유 경제로의 산업확장을 꾀하면서 새 경제 패러다임 구축에 나서고 있다. UAE는 일찍이 루브르박물관과 뉴욕대를 유치한 데 이어 인공지능(AI)과 화학 등 첨단산업 투자를 확대했고, 사우디는 지난 2016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발표한 ‘비전 2030’을 토대로 석유 의존국에서의 탈피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개혁을 진행 중이다.
사우디 정부 주도의 투자 다각화 노력의 일환으로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도 최근 과거 어느때보다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PIF는 지난해 전년대비 52% 늘어난 315억달러의 투자금을 쏟아부으며, 투자액 기준 세계 최대 국부펀드로 등극했다. PIF는 지난해 축구·골프 등 스포츠 분야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가 하면 미 게임업체와 스탠다드차타드의 항공기 리스 사업부 및 철강업체 하디드 인수 등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도 아메다바드와 뭄바이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현장에서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다. [로이터] |
이들 국가들이 목표로하는 선진국 진입 시점은 모두 2050년 전이다. 이를 위해 남은 기간 인도는 연간 8%, 인도네시아는 연간 7%, 그리고 사우디의 비석유 경제는 연 9%의 고성장을 꾸준히 이어가야한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국가들의 성장 전략에 대해 “1970~80년대 일본과 한국, 중국이 이뤘던 고성장을 교훈삼아 21세기 중반까지 경제 강대국 대열에 올라서겠다는 것”이라며서 “모디와 빈 살만은 기다릴 마음이 없다. 그들은 급격한 성장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미 각종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산업 발전 전략들은 해외 기업들을 끌어모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 미중 갈등 역시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게 큰 기회로 작용 중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원하는 지속적인 고성장이 21세기 세계 경제에서 실현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각국들이 취하고 있는 성장 전략은 오늘날 국가들의 성장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고성장 실현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다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와 나다니엘 레인 옥스퍼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 한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기 위한 유일무일한 산업은 제조업이었지만, 제조업만으로는 고성장을 도모하기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현대 산업의 현실이다. 더이상 ‘메이드인 인디아’ 전략이 인도에 연간 8% 이상의 성장을 담보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국가 성장 방식이 변화하면서 21세기 부국이 되기 위한 경쟁은 20세기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공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동원해 생산량을 늘리려는 것은 고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에 대한 우려도 크다. 국가 주도의 성장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성패에 따라 최악의 경우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사우디의 경우 석유 수요가 떨어지기 전, 국가 자금 여력이 고갈되기 전에 개혁 임무를 완수해야하는만큼 시간적 여유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