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빠른 속도로 늘어났던 주요 시중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이 1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해진 데다, 연말을 맞아 차입을 줄인 기업들의 영향이 더해지면서다. 반면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등으로 비우량 회사채 기피 현상이 나타나며 회사채 시장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는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급증했던 은행 대기업대출 잔액 ‘감소 전환’…수요 줄어드나=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36조4284억원으로 전달(138조3118억원)과 비교해 1조8835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은 2022년 12월(105조4608억원) 이후 1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에만 약 31조원(29.4%)가량 급격히 늘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제외) 잔액이 9.6% 상승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3배가량 빠른 속도다. 시장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발행 여건이 악화되며, 은행을 찾는 대기업의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주요 은행들 또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축소 압박, 건전성 우려 등에 따라 대기업 위주로 영업력을 강화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조달 흐름이 바뀌고 있다. 금리인하 기대감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으로, 회사채 발행 여건이 완화되면서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AA0 등급 회사채(3년물) 금리는 평균 4.8%를 웃돌았다. 같은 등급의 일부 회사채는 5%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일 기준 회사채 금리는 3.903%로 약 두 달 만에 1%포인트가량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이 지난해 11월 신규 취급한 대기업대출 평균금리는 5.29%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 3%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대기업들의 은행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대기업들은 줄지어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새해 첫 발행에 나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2000억원 수요예측에 1조4000억원가량의 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12월 대기업 대출 잔액 감소에는 연말 재무비율 등 관리를 위해 차입을 줄인 영향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대기업의 회사채 발행여건이 나아지면 대출 수요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계속 은행 찾아야” 회사채 양극화는 계속=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제외) 잔액은 311조3919억원으로 전월(310조2446억원)과 비교해 1조1473억원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고금리에도 경기둔화로 자금 수요가 이어진 영향이다. 한국은행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소기업 대출수요지수는 28로 전분기(17)와 비교해 11포인트 급증했다. 이는 지난 2021년 1분기(3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대기업 대출수요지수는 14로 전분기(17)와 비교해 3포인트 감소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등으로 회사채 양극화 현상도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발행 여건이 악화되며, 금융사 대출로 자금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4일 기준 AA0 등급 회사채 신용스프레드(국고채 3년물과 차이)는 0.68%포인트로 지난해 11월 초(0.778%포인트)와 비교해 98bp(1bp=0.01%포인트) 축소됐다. 그러나 BBB0 등급 회사채 신용스프레드는 같은 기간 5.84%포인트에서 5.82%포인트로 20bp 줄어드는 데 그쳤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에 대한 경계감이 높았고, 정부의 대응이 있어 크레딧 신용 스프레드의 급격한 확대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판단한다”면서도 “건설업 추가 부실 및 비은행 금융기관 손실 우려는 하위등급 여전채 및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