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 약이 없다”…돌아온 추위에 ‘감기약 품절 사태’ 심화

서울 시내 한 약국에 해열제 등이 진열되어 있다. 최근 독감뿐만 아니라 여러 호흡기 감염병의 유행 등으로 의료 현장에서는 해열제나 항생제 같은 약품 물량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보는 약을 처방했는데 그 약이 없어서 의사도, 약사인 저도, 처방전 갖고 오는 분도 다같이 당황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죠. 사실 약국에 약이 없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서울 마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모(54) 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씨는 이날만 해도 감기약을 찾는 7명의 손님을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그중 ‘동네 약국을 다 돌아봐도 감기약 하나 구하기 힘들다’며 이씨에게 짜증을 낸 환자 손님도 있었다. 이씨는 “날씨가 갑자기 다시 추워지면서 감기약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이든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 판매약이든, 감기약이라면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추워진 날씨에 인플루엔자(독감)와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 감염증 등 각종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감기약 품절 사태’가 심화하고 있다. 정부가 제약사의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증산을 조건으로 아세트아미노펜 등 해열제의 약가를 올리고, 그동안 비축했던 항바이러스제를 시장에 공급했지만 급증한 감기약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가 지난 8일 보여준 의약품 주문 사이트. 해당 사이트에는 타이레놀 등의 의약품들이 모두 ‘품절’인 상태였다. 안효정 기자

다른 약국의 사정도 비슷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도 감기약 수급의 불안정으로 재고가 ‘0’인 의약품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약사 A씨는 처방이 필요한 약제가 품절인 경우가 많지만 병원에 해당 약제와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감기약 품절 사태를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의약품은 약의 성분보다 상품 브랜드를 보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슷한 성분의 약을 추천해도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소아 감기약의 품귀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A씨는 “특히 ‘챔프 콜드시럽’이나 ‘코대원’ 등 시럽제형 어린이 감기약이 부족하다”며 “어린이 감기 환자는 날이 추워질수록 많아지는데 우리 쪽으로 들일 수 있는 약은 없으니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약사 김모(41) 씨는 코로나 이후로 감기약 품절 사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약사 커뮤니티가 ‘정보 공유 시장’에서 ‘의약품 교환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김씨는 “약사들끼리 모인 단체 카카오톡 방이나 교품방, 인터넷 사이트 등을 보면 ‘○○약 있으신 분’ ‘○○약이랑 △△약 교환해요’ 같은 내용밖에 없다. 그만큼 이 사태가 심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의 왜곡이 감기약 품귀 현상을 부채질했다고 보고, 국민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콧물약과 해열제 등 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을 다량 구입했으나 사용량이 저조해 사재기가 의심되는 약국과 병원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의약단체 등과 함께 민관협의체를 운영하며 소아 의약품을 중심으로 수급 불안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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