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8일 대만의 첫 국산 잠수함 하이쿤이 진수식을 갖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13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친미파인 집권 민진당과 친중파인 제1여당 국민당 후보의 박빙 승부가 펼처질 전망이다. 미국은 대만 외부의 누구도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중국은 국민당의 집권을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현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민진당이 재집권에 실패할 경우 인도·태평양 전략과 반도체 공급망 등 타격이 상당한 미국으로서는 속내가 복잡하다.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동북아시아 항로 중 하나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끼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미국에게 대만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최전방 지역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면 미국으로서는 괌·사이판과 하와이로 이어지는 태평양 전략 거점을 방어할 최전선이 뚫리게 된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대만의 가치는 더 커졌다. 전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가 중국의 손에 넘어갈 경우 미국의 첨단 산업과 국방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대만의 외교·국방 정책 노선을 자국의 입김 아래 두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무력 위협을 이유로 첨단 무기 판매를 늘려온 대만은 미국의 고객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강경해진 가운데 집권당인 민진당은 올해 국방비를 대만 사상 최대인 국내총생산(GDP) 2.5% 수준으로 늘렸고 병사들의 의무 소집 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등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반대로 중국에게 대만은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흡수통일해야 할 대상이다. 중국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으로부터 필리핀과 대만,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상의 선을 ‘제 1도련선(열도선)’으로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미 해군의 활동을 억제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셰펑 주미 중국 대사는 지난 9일(현지시간) 애틀란타 카터 센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중국의 평화와 안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지만 중국 정부는 대만 독립을 부르짖는 분리주의자들과는 타협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지원 속에 국민당 허유유이 후보는 중국과의 평화적인 타협을 통해 국방비 지출을 억제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으로 경제 회복을 추구하겠다는 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강력한 방어 무기를 이용해 대만을 중국에 대항하는 ‘고슴도치’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와 배치된다.
한편 친미·반중 노선의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중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로이터는 “차이잉원 현 대만 총통에 이어 독립주의자로 분류되는 라이칭더 후보가 집권하면 중국이 실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할 것이으로 관측된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성현 조지 부시 미중관계재단 선임연구원은 로이터에서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하면 시진핑 중국 정부는 민진당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해 국민 통합을 촉진하고, 민족주의적 정서를 기반으로 중국의 군사 및 경제 전략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대만 주재 미국 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대만연구소(AIT)의 소장을 2002~2006년 역임한 더글러스 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 담당 부회장은 “미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서 “대만에서 아직 위기가 임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는데 (라이칭더의 승리로) 양안관계(중국과 대만)가 급격히 악화되면 미국의 딜레마는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