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AP] |
[헤럴드경제=김영철] 지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법정에서 대통령 임기 중 행위에 대한 형사상 면책특권을 주장했지만 판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BBC 방송은 이날 워싱턴DC 항소법원 판사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 주장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항소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면책특권 주장을 기각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BBC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 문제가 연방 대법원까지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에 출석해 구두변론에 참여했고 트럼프 측 존 사우어 변호사는 “대통령의 공식 행위에 대한 기소를 승인하는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사들의 발언을 볼 때 트럼프 측 변호사의 변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항소법원 판사 3명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된 플로렌스 팬이 특히 면책특권에 회의적이었다고 BBC가 전했다.
팬 판사는 “대통령이 형사 기소에 대한 걱정 없이 자기 사면권을 팔고 국가 기밀을 팔고 네이비실(해군특수부대)에 정적 암살을 명령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사우스 변호사는 의회가 탄핵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형사 절차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판사 캐런 핸더슨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론에 대해 “법을 충실히 집행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가 형법 위반을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꼬집했다. 법무부 특별검사팀의 제임스 피어스는 대통령직이 법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인 1·6 사태를 수사해온 연방 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선거 진행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사태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 면책 특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의를 기각해줄 것을 연방 법원에 요청했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루이스 캐플런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음담패설이 담긴 2005년 연예방송 ‘액세스 할리우드’ 동영상이 다음 주 민사재판의 배심원단 앞에서 재연되는 것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패션칼럼니스트 E. 진 캐럴이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오는 16일 연방지방법원에서 시작된다.
재판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폭행 의혹을 반박하면서 “그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발언한 내용이 다뤄진다.
캐플런 판사는 액세스 할리우드 동영상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보는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영상은 2016년 대선 과정에서 공개돼 논란이 됐다. 액세스 할리우드의 남성 사회자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를 담았는데 여성의 동의 없이 키스하거나 몸을 더듬었다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설적 발언이 담겼다.
앞서 지난해 5월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별도의 소송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90년대 중반 캐럴을 성추행했고 혐의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500만 달러(한화 약 66억원)의 피해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