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 ‘영국 북동부 3부작’ 피날레, 나의 올드 오크

켄 로치 감독 26번째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그의 4년 만의 신작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에 이어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한 켄 로치 3부작 대미를 장식한다. 사진은 ‘나의 올드 오크’의 한 장면 [진진 제공]

“두건 대가리들”, “동네가 쓰레기장이 되고 있어!”

2016년 영국 북부의 한 폐광촌 마을. 시리아 난민이 몰려오자 동네 주민은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다. 시리아 난민이 영국에 모여들자 정부가 이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준 것. 그러나 주민은 이미 하락하고 있는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민 역시 폐광 이후 살림살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오죽하면 시리아 난민이 받는 구호품 마저 부러워할 정도다.

이 가운데 ‘올드 오크’라는 맥주집을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 분)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난민에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특히 난민 중 하나인 야라(에블라 마리 분)의 깨진 카메라를 고쳐주면서 가까워진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할 것 같은 동네 주민과 시리아 난민 사이에서 이 둘은 동네 전체를 위한 작은 희망을 만들어간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영국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을 운영하는 TJ와 난민 야라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국 영화 거장인 켄 로치 감독의 15번째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이는 영화제 사상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번 작품은 로치 감독의 이른바 ‘영국 북동부 3부작’의 피날레다. 앞서 그는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지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와 ‘미안해요 리키’(2019년)를 내놓은 바 있다.

로치 감독이 전작에서 한부모 가정, 은퇴한 목수, 택배 노동자 등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된 이들을 그려냈 듯, 이번엔 쇠락하는 폐광촌 마을의 주민과 시리아 난민을 조명한다.

영국 북동부 지역은 실제로 1984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 시절 국영 탄광 폐쇄를 두고 2년 간 파업을 벌인 지역 중 한 곳이다. 당시 광부는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구호 아래 서로 뭉치며 2년을 버텼다.

이번 영화는 실제 2016년 영국에 시리아 난민이 정착했던 사건에서 시작됐다. 로치 감독은 영화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영국 북동부 지역의 실제 소방관과 시리아 출신의 배우를 각각 TJ와 야라 역으로 낙점했다. 영화 속 시리아 난민도 실제 지역에 정착한 시리아 가족이다.

영화는 동네 주민과 시리아 난민을 선악 혹은 강자·약자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주민 역시 어쩔 수 없는 약자 혹은 피해자가 된 현실에 주목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광부의 구호를 동네 주민과 시리아 난민의 관계에 적용한다. 이들은 TJ와 야라가 마련한 공간에서 밥 한 끼를 나눠 먹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함께 뭉치면 이겨낼 수 있다는 연대 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나의 올드 오크’는 로치 감독의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올해로 88세인 그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며 은퇴를 시사한 바 있다. 다만 그가 2014년에도 은퇴를 선언했다 번복했던 만큼 영화계는 그가 은퇴 의사를 철회할 가능성에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로치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로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다. 세계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은 로치 감독을 포함해 단 9명 뿐이다.

17일 개봉. 113분. 15세 관람가.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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