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자서전엔…“형 끝나면 나가는 형무소보다 못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보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고(故) 임모 씨 자서전 [진실화해위 제공]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권유린이 자행된 부산 형제복지원의 강제수용 과정과 의료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 자서전을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고(故) 임모 씨는 1984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돼 이듬해 탈출할 때까지 부산 시내 파출소를 돌며 수용자들을 데려오고 새로 온 수용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임씨는 1994년 자서전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수용 과정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도 모자라 암매장까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임씨는 자서전에서 “각 파출소에서 전화가 오면 (수용자들을) ‘부랑아 선도’ 봉고차에 태워 이튿날 조서를 작성시켰다. 정신질환자로 보이면 일단 의사가 진찰하는 동안 며칠간 정신병동에 보낸다”고 썼다.

이어 “(신입 수용자와 면담하며) 정신질환자,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등 정신 문제를 캐냈다”서 “의사가 다녀간 뒤 진단을 보면 내가 먼저 작성한 내용과 거의 동일했다”고 적었다.

정신질환자로 분류된 이들은 복지원 내 병동에 갇혀 정신과 약물을 강제로 투약해야 했다. 진실화해위는 수용자를 통제·관리하기 위해 약물을 투약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화학적 구속’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자서전에 “형무소는 형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이곳은 가족이 데려가지 않으면 나갈 수 없으니 형무소보다 못하다”고 쓰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임씨의 아들이 제출한 이 자서전을 바탕으로 임씨가 서명하거나 날인한 형제복지원 신상기록 카드 19건을 찾아냈다. 일부 수용자의 입소 경위에는 정신관찰·정신환자 등의 내용이 기록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임씨의 자서전은 형제복지원 수용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의사의 체계적 진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며 "자신이 만난 피해자 개개인의 사연과 강제수용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조사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에서 임씨를 포함해 153명의 형제복지원 피해 사례를 추가로 밝혀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2022년 8월과 지난해 2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두 차례 진실규명하며 모두 337명을 피해자로 인정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전체위원회를 열어 임씨 등 형제복지원 사례와 더불어 1968년 성매매 여성과 부랑인 수용 시설로 설립된 ‘서울동부여자기술원’에서도 폭행과 강제 수용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11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여성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경찰과 보건소, 행정기관은 법적 근거 없이 단속에 나서 피해자들을 시설에 강제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진실화해위는 ‘덕적도 어민 부부 불법구금 사건’ ‘방동규 씨 긴급조치 위반 불법구금 사건’ 등 5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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