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가습기살균제를 제조·유통해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대표들이 2심에서 모두 금고 4년 실형 선고를 받았다.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선 유죄로 판결이 뒤집혔다. 단, 법정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 측을 대리했던 주영글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1심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들은 이중으로 상처를 받고 고통 속에서 지내왔다”며 “뒤늦게라도 인과관계가 인정돼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서승렬 안승훈 최문수)는 11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금고 4년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앞서 진행된 1심에선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유영근)는 2021년 1월 “문제가 된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합성 살충제⋅방부제 일종인) CMIT⋅MIT 성분과 폐질환 및 천식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옥시싹싹’을 판매한 옥시 전 대표가 징역 6년을 확정받은 것과 정반대의 판결이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해당 제품의 성분은 옥시의 성분과 유해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동물실험 결과를 근거로 “성분이 인간에게 천식을 유발한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역학 연구결과들에서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후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입원발생의 격차가 관찰됐다”며 “가습기살균제 노출기간에서 비노출기간보다 폐렴, 간질성 폐질환, 천식 등 호흡기계 질병의 발생률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봤다.
이어 “가습기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거나 건강상 피해를 염려하는 임산부, 영아, 입원환자, 노약자”라며 “이들에겐 소량의 유독한 화학물질에도 예상하기 어려운 심각한 건강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전체 판매량 대비 피해 사례가 소수라는 등의 사실만으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양형사유에 대해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사건 폐질환 또는 천식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며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는 등 그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설명했다.
단, 2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법정 구속은 면했다. 2심 재판부는 그 사유로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된 사안이고 법리적 쟁점이 큰 사안이라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